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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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當然)하다'라는 말의 뜻을 풀어보면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함. 또는 그런 일."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당연한 일이 참 많다.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우리는 그것을 몹시 효율적이고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총체적이고 입체적인 이해에는 이르지 못하고 대상의 본질을 피상적이고 단면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은 문제가 있다. 이것을 '문화'에 대입해보자. 문화에 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대한민국의 문화기본법은 '문화'를 문화예술, 생활 양식, 공동체적 삶의 방식, 가치 체계, 전통 및 신념 등을 포함하는 사회나 사회 구성원의 고유한 정신적·물질적·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로 정의한다. 이처럼 문화는 매우 폭넓은 개념이고 구성 요소도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떤 문화를 당연히 여기는 태도는 곧 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 1927~2001)의 대표작 『문화의 수수께끼(Cows, Pigs, Wars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 1975)는 서구의 시선으로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아서 설명할 수 없는 것만 같은 힌두교의 암소 숭배(1장)와 이슬람교의 돼지 혐오(2장)에 얽힌 수수께끼의 연원을 파헤치는 것으로 출발한다. 서구의 단편적인 시선에서 비합리적인 타 종교의 행태는 사실 그 지역의 환경에 맞추어 발달해 온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임을 설명한 해리스는 문화상대주의를 바탕으로 서구 일변도의 직선적이고 폭력적인 견해를 비판한다. 그리고 주로 인문사회 분야에서 논의되는 주제인 문화에 대해서도 그는 합리적인 추론에 입각한 과학적인 탐구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는데, 이를 통해서 얼핏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타문화속에 숨어있는 합리성을 도출해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상관없어 보이는 주제들이 모여있는 거 같지만 수수께끼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연스레 원시부족끼리의 전쟁(3장), 이 속에 내재된 남성 우월주의와 위계질서(4장), '포틀래치(potlatch)'로 대표되는 극단적 과시 문화(5장), 화물신앙(6장)의 논의로 이어진다. 주로 북아메리카와 뉴기니의 부족들의 사례에서 우리는 '문명화' 접촉 이전의 인간이라는 종이 본능보다는 얼마나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문화를 구성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원시문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구세주 신앙이 이룩한 평화(7,8장)에 관한 설명에서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룬 기독교 신앙은 앞서 설명했던 원시문화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는 것이며,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부작용이 이른바 '마녀사냥'이라 불린 사건이며(9,10장) 여기에는 지극히 비기독교적인 샤머니즘과 반문화적인 요소가 숨어있다(11장)는 분석이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이전에 접해본 적은 있는데 완독은 아니었고, 고3 때 대입 수시 논술고사를 준비하면서 책의 앞부분에 있는 암소 숭배와 돼지 혐오 관련된 지문을 접한 것이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처음 접한 때였다. 그 후 대학생이 되어 나는 《다문화,다종교적 가치와 관습》, 《문화경제학》 수업을 들으며 보아스, 미드, 베네딕트, 기어츠, 말리노프스키 같은 여러 인류학자들의 주요 저작과 아체베의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Things Fall Apart)』를 읽고 아직 서구화 문명에 접하지 못한 부족들이 어떤 문화 속에서 생활하며 오랜 전통 공동체가 급속한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어떻게 와해되는 지를 배웠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호혜성(reciprocity)와 관련된 부족들의 평등 지향 문화와 서구 문명과 전통 신앙이 결합한 화물신앙(cargo cult)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 책에는 5,6장에 관련 대목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총,균,쇠』의 집필 계기가 "당신네 백인들은 왜 그렇게 많은 화물을 개발해서 뉴기니로 가져왔는데, 우리 흑인들은 우리만의 화물이 거의 없었느냐"라는 원주민의 물음에 답하기 위한 다이아몬드 교수의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더욱 재밌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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