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지음 / 허블 / 2021년 6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 흔히 '공상과학'이라 불리는 장르는 영어단어 Science Fiction의 번역한 것이다. 공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인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봄. 또는 그런 생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를 장르적 특성에 결부시켜 보면 SF의 한국어 번역 명칭을 둘러싼 논쟁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다. SF 소설들이 공상이나 환상(fantasy)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과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미래의 모습은 분명 현재와는 달라진다. 과학과 기술의 수많은 하위 분야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시대의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고, 작품에 묘사된 설정과 배경이 비록 우리가 겪을 미래와 다를 수도 있지만 이를 비교해보는 것은 SF를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책에 실린 7개의 단편들 중 눈길이 가는 것은 단연 표제작인 <단어가 내려오다>이다. 만 15세 즈음 모든 인간들이 자신만의 단어를 받는 상황에서 제때에 단어를 받지 못한 주인공이 무엇이 될지 모를 자신만의 단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았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언을 생각해보면 자신만의 단어를 찾는다는 것은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하늘까지 닿을 탑을 쌓을 욕심과 교만 때문에 신의 미움을 사 인간은 여러 언어를 사용하게 됐고, 이는 의사소통의 부재로 이어져 결국 바벨탑은 미완성으로 남았다지만 그 덕분에 인간은 저마다의 특징이 있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피진과 크레올 개념이 등장하는 작중의 상황은 오랫동안 해외를 돌아다니며 생활했던 저자의 경험을 반영한 것일테고, 그러한 와중에 적어도 한 번은 느꼈을 정체성의 문제와 맞닿은 것이다.
*. 동아시아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