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폭력 -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유서연 지음 / 동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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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불거진 성범죄, 예컨대 N번방, 웹하드, 딥페이크 합성, 불법 몰카 촬영 등은 디지털 공간 안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인간의 활동 범위는 오랫동안 실물 세계에 국한되었지만 새로이 발명된 가상 공간 안에서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고 이전에 없었던 소통 행위가 가능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항상 양날의 칼 같아서 긍정적인 면모만큼이나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성범죄와 가상 공간이 결합했을 때인데, 엄청난 속도로 자료가 퍼지면 그것을 일일이 단속하기란 불가능하단 점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끝없는 고통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가상 공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니란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 책에 따르면 무언가를 '본다'는 시각이란 감각이 깊이를 알 수 없는 폭력과 악으로 변모한 것은 사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서 등장하는 것은 기술을 뜻하는 '테크네'와 앎을 뜻하는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이다. 이 두 개념은 서로를 떼어내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의 감각 중 대표적인 것은 다섯 가지 오감이고, 그 중 가장 지배적인 것은 시각이다. 무언가를 본다는 행위는 최신의 기술과 결합하면 이전에 없던 권력이 된다. 이 맥락이 근대의 데카르트와 현대의 하이데거, 그리고 렌즈라는 기술과 만나면서 더욱 공고해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SNS에서 엿보는 타인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쉬이 노출하는 나의 사생활은 프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관음증과 노출증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미묘한 경계선에 걸친 행위이다. 


    "모든 것을 보려하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단언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보려고 할수록 정작 보여지는 것은 대상의 본질은 결여된 피상성일 확률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커다란 문제가 되는 디지털 범죄를 서구의 오랜 철학적 맥락에서 진단해 그 연원을 들춰보는 시도는 절대 쉬운 독서는 아니었지만 문제의 근본을 생각케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본다'는 행위가 어떻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시각의 폭력이 과연 끝날 수 있을지라는 우려가 든다.



*. 동녘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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