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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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에 선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다층적이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문제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새롭다. 이 책의 저자인 영화감독 이길보라는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그러니까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다. 온갖 소리를 발산해내는 사회 속에서 저자의 부모는 들을 수 없다. 그런 그들을 세상과 이어주는 것이 어릴 때부터 저자의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아주 세심한 것들에까지 귀를 자연스레 기울인다. 이길보라란 사람이 한두 가지의 직업으론 정의하기 힘든 인물이 된 것은 아마 이런 성장배경 탓이 클 것이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학교를 떠나 여행을 통해 길에서 인생을 배웠다는 그의 인생은 곧 '로드스쿨러(Road-schooler)'이자 장애인권, 페미니즘, 임신중지 등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이자 행동가인 '아티비스트(Artivist)'의 면모로 정의할 수 있다


    책의 도입부부터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통렬하다. 그는 어린 시절 어떤 재력가에게서 매달 일정한 금액의 후원금을 받았는데, 부유한 이의 자선이 기대했던 것은 장애인의 자녀가 훌륭하게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 사회에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를 보살피지 않고 여행을 떠나겠다는 학생 시절의 결단이 불러온 것은 후원 중단이었고, 이는 곧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애 해방'이라는 인식이 정작 장애인들과 가족들의 삶을 얼마나 옭아맸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장애인이 접하는 문제는 장애 그자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장애 서사'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곧 사회 전체로 확장되는 대목들로 이어진다. 2016년에 발표한 <#나는_낙태했다>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낙태죄 폐지에 동참하는 목소리를 내었지만 작년에 발표된 개정안은 낙태죄를 유지하되 14주까지의 기간 내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선택이 왜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이어져서 자유로운 행동을 제약하는 건지 반문하는 그는 예술계의 곤궁한 처지를 언급하며 논의를 '방 대신 집'이라는 공간의 문제와 기본소득 논의로 옮긴다. 우리 모두는 개인이다. 


    하지만 온전히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는 이는 없다. 수많은 '나'가 모여서 '우리'가 되어 한마음 한목소리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분명 보다 좋은 방법으로 해결될 것이다. 이길보라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연대의 힘이다. 파편적인 주제를 두루 언급하며 저자는 독자들을 이어준다. 이러한 이어짐 속에서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 개인들은 마침내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 동아시아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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