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한길그레이트북스 173
다니엘 벨 지음, 박형신 옮김 / 한길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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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온 세계가 양분된 냉전이라는 체제가 종식된 것은 오랜 대립을 지탱하던 두 기둥 중 하나인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들이 개혁과 개방을 외치며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원리를 수용한 것은 자본주의가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그만큼 압도적인 이데올로기라는 반증이다. 


    자본주의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뿌리내렸는지를 처음 분석한 이는 사회학의 거두 막스 베버다. 1905년에 발간된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건 근대 종교개혁의 결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가톨릭(구교)의 종교관에서 경제적인 부유함은 종교적인 독실함과도, 윤리적인 성실함과도 대비되는 것이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오는 것이 더 쉽다"는 마태복음의 구절은 물질적인 부유함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치 판단의 척도였다. 하지만 그간 오랫동안 축적된 가톨릭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성경 본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여 기독교의 분파(신교)를 만들어낸 츠빙글리, 루터, 칼뱅 같은 종교개혁가들,특히 칼뱅의 예정론에 따르면 정당하게 축적한 재산은 신의 뜻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사상은 그동안 종교란 그늘에 가려졌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줬다. 하지만 그는 무비판적인 재산 축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청빈함을 강조했다.


    칼뱅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프로테스탄트(청교도)라 불리며 유럽을 떠나 아메리카로 향해 오늘날의 미국을 개척했다. 유럽에 남은 이들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는데, 바로 부르주아다. 그러나 부르주아들은 청렴함을 중시한 칼뱅이 살던 시기와는 다른 시간, 그리고 다른 생각 속에 있었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간이 생산하는 물품들의 총량과 종류는 폭증했는데, 이로 인해 인간은 더 이상 금욕과 절제가 아니라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20세기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이 대목에서 자본주의 안에 숨겨진 모순성을 포착했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금욕과 절제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이념은 탐욕과 무절제 없이는 더이상 구조를 지탱할 수 없게 된다. 벨은 기술-경제적 질서, 정체, 문화라는 세 가지 영역 모델을 두고 자신의 이론을 전개했는데, 또다른 대표작인 <탈산업사회의 도래>는 기술-경제적 질서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에서는 다른 중심축인 문화를 깊이 다룬다.   


    벨에 따르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사회 그 자체는 통합성을 결여하고 있다. 즉 사회란 서로 다른 것들의 총합에 불과한데 사회 속 개별자들을 공통으로 이어주는 것은 다름아닌 종교다. 물리적 제약과 실존적 질문 사이에 존재한 자연과 인간의 자연 탐구 능력을 확장시켜주는 도구에 불과한 역사는 어떤 사회 속에 존재한는 인간들을 이끌어줄 지침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종교는 인간을 넘어선 존재와 인간을 매개해주는 초월성을 띠고 있기에 자연이나 역사보다 제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본책에서 할애한 1960년 미국의 상황은 2차 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진 미국의 참전과 유럽에서 일어난 68운동의 영향으로 기존의 사회문화적 가치가 전복되는 극도로 혼란한 시기였다. 전통적 규범이 무너지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에서 당대인들이 마주한 가치 혼란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하면서도 반대로 미국에서만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출간 20주년을 기념해 올해 다시 출간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고전과 학술 명저 번역이 아직 미흡한 한국 출판계에 분명 가뭄의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특유의 통찰성있는 이론에도 벨은 생전에 여러 학자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받은 비판에 대한 반박을 개정판에 덧붙이고 난해한 자신의 이론을 요약해 논지를 정립했다. 적지 않은 본문의 분량에 더불어 초판과 개정판의 서론, 생전 최신 판본의 후기, 벨이 직접 쓴 서론, 그리고 번역자 박형신 교수의 꼼꼼한 해제는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 한길사 대학생 서포터즈 2기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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