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평생 그들의 미래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데 그 미래가 어느 순간 일어난 위험 때문에 갑자기 막혀 버리고 이제 끝이다, 싶으면 갑자기 눈을 돌려 과거를 바라보게 되니까, 거기서 모든 과거의 경험이 한꺼번에 의식에 떠오른다는 거지.” (본문 128쪽)


신기한 일이다. 인간의 감각이란 크게 나누면 오감, 그 중에서도 시각에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로지 현재만을 보면서 살아간다. 지난 날에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낀 것은 모두 우리의 머리나 마음 속, 아니 어쩌면 그 둘 다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계기로라도 마음 한 구석에 치워뒀던 기억의 편린이 되살아나면, 조그마한 조각은 이내 거대한 폭풍이 되어 이내 몸과 마음을 전부 집어삼키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겐조는 해외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원고 청탁을 받아 그 수입으로 가족들을 부양하는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양부모에게 맡겨졌고, 양부의 불륜 행위 때문에 양부모 가정은 이혼하고 자신도 파양당한다. 오래 전 인연이 끊긴 양부 시마다가 불현듯 나타나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면서 그는 잊어버리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에 휩싸인다. 이어 양모도 나타나 금전을 요구하고, 심지어 자신의 형과 누나, 매형, 그리고 은퇴하고 사업에 실패해 사정이 힘들어진 장인까지 모두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가족과도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겐조는 돈과 엮인 인간 관계 때문에 더욱 괴로워진다. 


소설의 줄거리는 큰 굴곡없이 겐조에게서 돈을 빌리려는 주변 인물들과 마뜩치 않게 여기면서도 어떻게든 지원해주는 겐조, 그리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와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한 집안에 살고 자녀가 셋이나 있지만 겐조와 아내는 서로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평행선같은 관계다. 아니 평행선보다는 동심원같은 관계가 더 어울릴 듯하다. 식구라는 공통점으로 엮인 두 사람이고 주변이 보기엔 서로 모나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 같지만 둘은 서로를 이해하려고도, 이해할 수도 없는 사이다. 이 갈등의 시작은 어디부터이고 끝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만나지 못하는 원이 서로 자기 자리만을 멤돌면서 갈등이 이어질 뿐이다.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소세키(본명 긴노스케) 늦은 나이에 아이를 둔 부모의 부끄러움 때문에 같은 마을 이웃에 양자로 맡겨지지만 양부모는 소세키를 자신들의 노후 부양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을 뿐이다. 하지만 조숙한 소세키는 이 사실을 너무도 이른 나이에 알았고 감수성이 풍부했기에 이 사실이 평생의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가 남긴 유일한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작가 사후 1년 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의 평생을 어떻게 붙들었는지를 고백하는 마지막 일기같기도 하다. 


원제를 직역하자면 ‘길가의 풀’이란 뜻이라고 한다. 길을 걷다가 길가의 풀에 눈길을 주는 건 원래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글쎼, 우리 인생의 목적이란게 언제나 분명하고 확실한 경우가 얼마나 있던가. 오히려 이런 사소한 행동이 쌓이고 쌓여서 이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란 것이고 소세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의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그럼에도 결국 바뀌는 것은 없다는 걸 ‘한눈팔기’로 보여준 게 아닐까. 한 눈을 팔아도 인생은 결국 인생이니 말이다.


“이 세상에 정리가 되는 일 따위는 거의 없어.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나 이어지거든. 단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하니까 남들도 모를 뿐이지.” (본문 291쪽)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