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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도넛 - 존경과 혐오의 공권력 미국경찰을 말하다
최성규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닉트는 2차 세계대전 적국이었던 일본과 일본인을 날카롭게 해체한 <국화와 칼>이라는 명저를 남겼다. 그간 미국인의 시각으로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이라는 나라의 속성은 이 책의 종합적인 분석 덕분에 예측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그 결과 미국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국화와 칼이 갖는 상반되는 이미지처럼 총과 도넛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찰은 강력한 공권력의 상징인 총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동시에 근무 중에 우걱우걱 도넛을 먹는 친근한 인상도 함께 준다. 영화나 드라마만이 아니라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미국 경찰의 실체는 무엇일까?
답은 둘 다이다. 현 성북경찰서장인 저자는 2017년부터 3년간 미국 시카고 총영사관 경찰영사로 재직했는데, 재외국민 보호업무를 담당하며 현지경찰과 자주 교류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밝힌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미국 경찰에 대한 보고서이다. 총과 도넛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미국 경찰이 얼마나 특수한 집단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미국은 전에 없는 새로운 체재로 나라를 세우기로 했다. 그런 미국을 반으로 갈라놓은 것은 연방주의자들과 반연방주의자들의 견해 차이였다. 해밀턴을 중심으로 한 연방주의자들은 연방정부에 강한 권한을 집중시킬 것을 주장한 반면 제퍼슨을 위시로 한 반연방주의자들은 각 주들의 자치권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연방의 지나친 비대화를 반대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의 권력을 어떻게 분할할 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제도를 매우 이질적으로 만들었는데, 경찰도 그 중 대표적이다.
경찰청을 중심으로 한 위계 서열이 확고한 우리나라와 대다수의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경찰은 주경찰, 보안관, 시경찰이 나누어져 각자의 업무를 다하며 필요시에 협력하는 관계다. 이들 사이의 서열은 없으며 그저 담당하는 구역과 업무가 다를 뿐이다.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 낮은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건국부터 자치 정신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경찰제도도 그 산물이다. 아무리 작은 단위의 행정 구역이라도 독립적인 경찰 제도가 있다. 미국 경찰이 지역마다 서로 다른 제복을 입는 것은 이들의 소속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을 묶어줄 공통점은 직업이 경찰이라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경찰 한 사람이 워낙에 넓은 구역을 담당해야 하니 자연스레 경관 한 명의 권한도 막강해진다. 하지만 이들은 경찰이기 이전에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엄연한 지역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친근한 모습도 보인다. 총과 도넛으로 대표되는 미국경찰의 이중적인 모습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성과 행정 제도, 지리적 특성이 모두 어우러진 결과물인 것이다.
경찰은 치안과 행정, 사법 등 많은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이기에 그 역할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는 어느 나라에서간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찰 조직 개편안이나 수사 권한 조정같은 화두는 비단 정치권에만 국한되는 쟁점이 아니라 시민들의 피부에 체감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찰의 권한과 역할을 생각하는 것은 곧 성숙한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법집행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경찰이 어떤지는 다른 나라 경찰을 볼 때 훨씬 선명하게 보인다”는 저자의 말처럼 미국경찰을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나라 경찰,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