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역사 -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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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는 '비정상적'이며 치료해야 할 '질병'이다"라는 생각이 오늘날 전세계에 만연하다. 이런 낙인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장애인들을 가두는 울타리, 아니 커다란 장벽이 되었다. 한국에서 장애인은 일상에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에 장애인의 수가 적어석 아니다. 이들이 바깥에서 활동하는 데에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아서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까닭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이들을 위한 인프라는 우리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이들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팽배해있다. 그렇다면 '포용성'과 '개방성'을 무기로 짧은 역사에도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이 된 미국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라는 책의 부제처럼 저자는 장애가 미국 역사에서 어떻게 취급되었는지를 꼼꼼히 조사했다. 이 책은 그 연구의 집대성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다양성이란 가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고국을 등진 채 새로운 시작을 했던 이들이 멀리 아메리카 대륙까지 온 이유는 그동안의 차별과 억압, 빈곤을 뒤로 하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온갖 가치가 용인되고 존중받는 이 땅에서도 장애는 그러지 못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신체적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다른 장점과 재주를 극대화시켜 공동체에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들에게 장애는 신체적 불편함이 아니라 사회와 단절되는 것이었다. 유럽인들이 이주해오면서 장애인은 더이상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되었다. 더 나은 나라를 세우려는 이상에 부합하지 않은 이들을 적극 배제할 필요가 있었는데 장애는 온갖 부정적인 잣대로 규정되면서 이윽고 '정상'의 반대말이 되었다.


    꼭 몸이 불편해야 장애인으로 취급받았던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끌려온 흑인들이 자신의 운명에 저항해 노예 해방 운동에 가담한다면 이들은 곧 장애인이었다. 노예라는 안정적인 삶을 거부하고 사회 체제의 전복을 노리는 이들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투표권을 얻은지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여성들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성은 정치라는 복잡한 행위에 참여하기엔 불완전하고 미성숙하다는 생각은 마치 사실인마냥 여성의 권리 운동을 억압하는 사상의 근거가 되었다. 체제를 전복하려는 점에서 여성 참정 운동 역시 노예 해방 운동과 다를 것 없는 취급을 받았다.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와중에도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다면 미국으로 올 수가 없었다. 이들이 미국인이 되기엔 이상적인 미국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여러모로 많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고등학생 때 학교 옆에 있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 했던 때를 떠올렸다. 무조건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지레짐작한 나는 출입구로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오시는 분에게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에게 돌아온 건 괜찮다는 가시돋힌 대답이었다. 남을 위한 배려가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장애인이라면 무조건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나의 무지가 컸으니 말이다. 


   사소하지만 책의 표지에 점자로 쓰여 있는 제목덕에 이 책이 더욱 입체적으로 보인다.몇 년 전부터 사회 약자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김승섭 교수의 번역이 돋보였다. 서문에서 밝히듯 장애를 규정하는 건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주 큰 역할을 하기에, 장애에 만연한 부정적인 편견을 걷어내기 위해 어떤 단어를 써서 번역하는 것이 좋을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다른 용어를 쓴다는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우리의 생각 역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행과 동정이 아닌 존엄과 권리로 장애를 인식한다면, 그리고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이를 반영한다면, 우리는 장애 친화적인 사회를 너머 장애를 구분하는 기준이 없어지는 평등한 세상에 한 걸음 더욱 가까워 질 것이다.



*. 동아시아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동아시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서평은 전적으로 저의 사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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