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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회랑 : 국가, 사회 그리고 자유의 운명 -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다론 아제모을루 외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0년 9월
평점 :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중간만 가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상반되는 두 극점 사이에서 중간을 유지한다는 건 곧 균형과 조화를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중용(中庸)』에선 상황에 맞게 적절한 그 중(中)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즉 과(過)와 불급(不及)의 중간이 중용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중용의 이치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힘들단 것이다.
중용은 인간 사이의 도를 논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그중에서도 개인들이 모여 이룩한 국가(이때 ‘국가’라는 전체는 ‘개인’이라는 부분의 합보다 커진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는 구분된다.)와 개인들의 집합인 사회간의 관계는 오랫동안 정치학의 주요 논의 대상이었다. 너무 강한 국가는 독재가 되고,반대로 너무 강한 사회는 무질서로 흐른다.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은 이 상태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두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구간인 ‘좁은 회랑 narrow corridor to liberty’로 진입하는 것이다. 좁은 회랑 안에서 국가의 번영과 시민의 자유는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균형을 달성하기란 정말 어렵기에 회랑은 ‘좁은’ 것이고, 문이 아니라 ‘회랑’인 이유는 국가와 사회가 서로를 견제하는 와중에 언제 어디서든 회랑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오늘날, 시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것과 집회를 금지하는 것, 유사시 개인 행적을 조회하는 것등이 논란이다. 이렇게 비대한 국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회는 선거를 통해 정부를 바꾸거나 언론과 집회를 무기로 대응한다. 국가와 사회가 충돌하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한 논의점들이 균형과 견제를 이루는 건 좁은 회랑 안에서다. 홉스가 제창한 리바이어던은 너무도 강력하기에 온갖 족쇄에 채워진 채 좁은 회랑으로 끌려가야 한다.
좁은 회랑으로 진입하는 것도 어렵지만 쭉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운 문제다. 삼각형의 무게중심을 찾아도 그 지점에서 벗어나면 금방 균형을 잃는다. 외줄타기를 하는 광대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신의 신체를 아주 섬세히 조절해 줄 위에서도 균형을 유지한다. 그렇기에 좁은 회랑은 끝이라는 지점이 있는 마라톤이 아니라 목적지가 없고 아주 좁은, 그러면서도 언제든 밖으로 벗어날 수 있는 터널과 같다 좁은 회랑 안에서도 쉼없이 나아가야 할 까닭이다.
국가와 사회가 조화를 이루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해 지금껏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피를 마시고 자라는 나무이다. 이 나무가 얼마나 성장할지, 아니면 말라 비틀어질지는 우리의 몫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만든 제도인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지, 사회가 국가에 채우는 족쇄는 무엇일지, 국가의 시장경제 개입은 어느 정도여야 할지, 참정권과 인권운동을 넘어선 시민의 역할은 무엇일지, 전부 어렵고 정답은 없는 문제들이다. 끊임없는 논의와 모색을 통해 좁은 회랑이라는 구간을 나아가길 바라지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