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이 부른다 - 해양과학자의 남극 해저 탐사기
박숭현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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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능적으로 낯선 것을 두려워한다. 아니, 인간만이 아닌 모든 생물이 다 그럴 것이다. 이성과 사고를 겸비한 채 인류는 지구상의 어떤 생물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이 발전의 밑거름에는 탐험이 있었다. 몰랐던 것도 직접 가본 후에 비밀을 밝혀낸다, 이것이 탐험의 핵심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사는 행성인 지구의 비밀은 그렇게 조금씩 풀려갔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도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은 탐험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우리가 미처 밝히지 못한 곳이 아직 남아있다. 얼음으로 뒤덮힌 극한의 땅, 남극이다.

남극은 너무나도 혹독한 기후 탓에 인간이 살지 못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우리는 남극에 관해 모르는 것이 정말 많다. 원래 암석과 지질을 연구하던 학생이었던 저자도 남극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남극 근처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승선하게 된다. 두 번 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서였다. 이 배는 단순한 항해가 아닌 바다를 연구하기 위한 탐사선이었다. 이 때부터였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던 땅을 공부하던 학생은 이 항해를 계기로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바다는 인간이 살지 못하는 곳이지만 지구의 절반을 훨씬 웃돈다. 다른 행성과 달리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생명이 처음 나타났다. 그래서 바다의 비밀을 밝히는 것은 생명의 기원을 찾는 것이자 어느 곳보다도 특별한 행성인 지구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밀을 밝혀내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선 먼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이 때문에 바다에서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게다가 워낙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곳이기에 당초 계획했던 일정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기가 부지기수인 공간이 바다라는 곳이다.

많고 넓은 바다 중에 남극해는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최악의 공간이다. 그래서 남극해는 다른 바다보다 더욱 알려진 것이 없다. 남극이라는 거대한 땅을 둘러쌓고 있기에 넓이도 광활하다. 안그래도 넓은 바다는 아주 조금씩, 우리의 손톱이 자라는 속도로 더욱 커지고 있다. 남극을 둘러싼 바다와 다른 대양의 경계에 위치한 해령에서 새로운 지각이 형성되는 이유에서다. 아주 오래 전에 형성된 대륙 지각과는 달리 해양 지각은 생겨난 지도 얼마 안되어 아주 젊다. 그래서 해령의 운동과 그로 인한 결과와 부산물을 연구하는 것은 곧 지구가 생겨난 비밀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것과 같다.

암석학에서 지질해양학으로, 고해양학으로, 또 중앙 해령으로. 바다는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 바다를 연구하는 학자의 관심사는 꼭 그렇게, 해류의 움직임처럼 자연스럽게 옮겨 갔고, 바다가 넓어지는 것처럼 그가 연구하는 분야도 더욱 늘어만 갔다. 처음 온누리호에 승선한 이후로 25년간 25회, 매년 바다로 나가 지구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학자의 글을 읽으니 그 자체로 지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었다. 글에서 그가 보고 느꼈던 것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단순한 항해기나 탐험기가 아니라 해양 연구에 쓰이는 여러 장비들과 사용법, 다른 연구자들과의 협업 과정도 꽤나 자세히 나와있기에 전혀 몰랐던 분야를 새로이 알게 되는 재미도 있었다. 책 중간 중간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지구과학에 관한 설명이 책 후반부에 너무 밀도 있게 서술된 것은 살짝 아쉬웠으나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다. 여러 직함이 있지만 탐험가로 불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박숭현 박사의 대양 항해는 계속될 것이다. 남극이 부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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