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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왕국 프로이센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박병화 옮김 / 마티 / 2020년 7월
평점 :
오늘날 유럽 한가운데 자리한 독일이라는 나라가 탄생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수십 수백 여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었던 까닭이다. 이들이 한 나라가 되었던 것은 그 중 하나였던 프로이센(Preussen, 영어로는 Prussia, 한자로는 普魯士)의 주도로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은 프로이센의 수도였다. 지금의 독일보다 더 광대한 영토, 그러니까 지금의 러시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지까지 세력을 떨쳤던 이 나라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직간접적으로 크게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역사에서 그 흔적이 지워진다. 이웃 유럽 국가들과 자국 독일에서마저...
호엔촐레른 가문이 다스리던 브란덴부르크에서 유래한 프로이센의 시작은 여느 나라처럼 작은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나라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유럽의 주요 전쟁에 적극 참전해 다른 국가들을 위협하고 독일 내의 다른 나라들을 하나둘씩 병합했다. 적극적인 팽창 정책을 펼치던 프로이센은 정치, 경제, 군사, 과학, 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한다. 유럽의 팽창 세력들이 정점해 달해서 충돌한 것이 1차 세계 대전이고 그 전쟁에서 프로이센은 패했다. 그 후에 세워진 바이마르 공화국과 독일 제3제국인 나치 독일은 프로이센과 큰 연관성이 없음에도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책임은 프로이센을 향했다. 다시는 독일이 팽창하지 못하도록 온갖 억제가 가해져야 했고, 전례없이 빠르게 성장했던 프로이센의 흔적과 기억은 그렇게 희미해져 갔다.
요즈음의 독일에서 세계 대전의 원흉이 된 과거사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거나, 아예 부정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찬양해 모든 그림자를 걷어내려고 할 수도 있다. 역사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순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역사를 대할 때는 그렇게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어찌됐든 자국의 역사에 적절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긴 힘들다. 그래서 이 책은 독일인이 아닌 호주인이 집필한 것이다. 저자는 프로이센이 자국의 역사가 아니기에 최대한 프로이센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조망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힌다. 1000페이지나 되는 엄청난 분량은 다각도로 프로이센을 분석한 결과의 산물이고, 그 자체로 작가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프로이센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발전했고, 어떻게, 그리고 왜 역사에서 잊혔는가? 쉬이 답할 수 있는 의문은 아니다. 이 책은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모든 것을 알려주진 않는다. 하지만 프로이센에 관해 그 어느 책보다 상세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지워진 권력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이다. 그간 한국에 프로이센에 관한 본격적인 역사서가 없었다고 하는데 이만큼 충실한 내용을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니 반갑다. 프로이센의 승리와 비극이 이 책 한 권에 오롯이 담겨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