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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과 친해지는 법
방현희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9월
평점 :
'불운과 친해지는 법' 이라는 책을 펴서 한 장 한 장 읽다보면 느껴지는 게 있다. 이 도서의 최고의 매력이라 꼽고 싶은 '인간미' 다. 프롤로그에서 형진이가 홀로 남겨지게 된 원이에 대해 알 수 있다. 과거의 모종의 비밀도 예견한다. 책 제목을 빌어 말하자면 형진이의 '불운'이다. 이 불운을 특유의 '낙천성'으로 딛고, 셰어하우스를 모집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형진이의 셰어하우스는 독톡하다. 바로 '집밥 먹는 셰어하우스.' '집밥'이라는 단어에 따뜻함이 물씬 풍겨져 나온다. 타지에서 홀로 치열하게 생활하다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자녀에게만 하늘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걱정 거리를 입에 담으며 잔소리를 시작한다. 그래도 괜찮다.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정성 가득 담긴 푸짐한 집밥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불운과 친해지는 법, 방현희 지음>
집밥 먹는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사람은 총 5명. 형진이까지 합해 총 6명이 살아간다. 입주자를 소개하겠다. 혜진, 수진 자매로 언니는 화장품 대기업 마케팅 팀장으로 예쁘지만 까칠하다. 수진은 경비행기 조종사가 꿈인 소녀로 수줍음이 많다. 호준은 야간반 수의사. 정규직으로 꿈꾸며 회사에 충성중인 계약직 사원 민규. 마지막으로 정우는 밴드에서 퍼스트 기타를 맡고 있는 아직은 풋내기 아티스트. 이밖에 형진이의 셰어하우스에 감각적인 화장실과 욕실을 설계해준 강지우와 부모님이 살아생전 친밀하게 지냈던 장시아저씨가 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문제 들이 발생한다. 졸지에 혼자가 된 형진에게 닥친 자신의 과거사를 비롯한 입주자들의 문제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부모가 바라는 길과 자녀가 바라는 길이 달라 빚어지는 갈등. 이혼으로 인해 혼자 남겨진 아들과 냉혹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미혼부. 정규직으로 승급되기 위해 야근은 기본, 상사의 비유를 하나하나 맞춰가며 열심히 해왔지만 학벌에 밀려 좌절되는 일. 여자 혼자 건축업계에 뛰어들어 모진 세상풍파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일 등. 여기에 남녀가 함께 생활할 때 빚어지는 핑크빛 스캔들은 덤. 이런 불운들은 딱히 특별하지도 않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또 현재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비일비재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비일비재한 문제라고 견디기가 쉬운것도 아니지만. 허무맹랑한 불운들이 아니라 읽다보면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고, 책을 읽는 재미가 한층 더해줄 것이다. 이게 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이다.
두 번 째 매력은 ‘모성(母性)’ 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었다. 개인적으로 모성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불편함이 느꼈다. 모성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헌신, 희생 그리고 사랑이 떠오른다. 아름답고, 감사한 마음이 샘솟는다. 하지만 은연중에 여성에게 어머니의 이상적인 상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 같으 불편했다. 어머니는 강하다고 하지만, 어머니도 여자다. 여자는 사람이고, 사람은 부족한 점이 차고 넘칠정도로 많은 연약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생각을 '불운과 친해지는 법'이라는 책을 통해 공감받은 듯 해 기뻤다. 모성을 아름답게 표현하지 않았다. 그들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말을 건넨다. 미화를 시키지도 않았다. 비난도 아니었다. 여기에서 표현된 어머니는 누구하나 완벽한 모성으로 자녀를 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속이 답답해짐을 느겼지만, 이게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온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안타깝지만.
“몰이해가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이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빚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형진은 애처롭게 우는 정우의 어머니가 무척 낯설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어머니 역시 가슴 깊은 곳에는 저런 나약함과 저런 방향 없음,, 저런 이기적인 성품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약해서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방향이 없어서 자식을 헤매게 하고, 이기적이어서 자식을 떠나가게 했음에도 나를 위해 돌아와달라고 울부짖는, 그런 어리석은 점이 엄마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불운과 친해지는 법, 91p>
세번째 매력은 '한국의 미식소설'이라고 불릴 법하다는 점이다. 집밥 먹는 셰어하우스 답게 갖은 한식 요리들이 책속에서 출몰한다.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듣도 보도 못한 요리들이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알겠지만,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요리들이다. 책 속에는 세가지 요리의 레시피도 있다. 책을 읽는 재미를 위해 요건 남겨두겠다. 요리를 좋아하고 잘한다면, 한 번 쯤 시도해봐도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일본 미식영화나 소설을 좋아해서 인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머릿속에 머릿말 풍선을 띄우고 그려보자. 요리를 떠올리고, 왁자지껄한 흥겨운 분위기에서 조잘 대며 너도나도 손을 뻗어 먹는 모습을. 단, 배를 채우고 읽는 것이 좋겠다. 배고프다.
한 두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홀로 살아가는 게 익숙해져 버린 세상이다. 1인가족이 늘어나면서 혼밥족이 많아졌다. 요즘이 그런 때가 아닌가. 그런데 집밥 먹는 셰어하우스로 일면식도 없었던 5명이 뭉쳤다. 생판 모르던 남이었던 사람이지만, 아침에 함께 출근 준비를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좋고 나쁜 일에 축하를 하고 위로를 전하면서 점차 돈독해진다.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남'이기에 선을 넘지 않으며 축하하고 위로한다. 선을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서 보여주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면서 혼자라는 사실을 잊게 해준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작정 좋은 것만도 아니다. 사실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보여준다. 여기에 요리 잘하는 집주인 형진이가 입주인의 몇마디 칭찬에 넘어가 냉장고를 탈탈 털어 한식, 양식 등 갖은 요리들을 뚝딱해오는 모습은 어머니의 손맛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지어지며, 배가 고파진다. 함께 살아보고 싶어질 정도다. 혼밥이 익숙해진 시대라고는 하지만, 사람들과 끝없이 조잘대며 먹는 밥도 정말 맛있지 않나. 특히 홀로 건축업계에 뛰어들어 세상에 맞서고 있는 딱 부러지고 쿨한 그녀가 집밥에 감동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서 "나같은 사람이 저기 있네"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형진이와 강지우의 이야기도 좋다. 읽는 재미가 쏠쏠해진다.
“그동안 아쉬운 것도 모자란 것도 그닥 없었어요. 근데, 이제 와서 보니, 내게 뭐가 부족했었는지 알겠네요.”
“그, 그게 뭡니까.”
“따뜻한 밥이요. 하하, 한 번도 내 입맛에 맞춘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느 날엔가, 나는 왜 내 입을, 내 감각을 소홀히 했나, 생전 처음으로 그런 후회를 하고 있더라구요.”
<불운과 친해지는 법, 140p>
참고로 이 도서는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에 선정되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BOOK TO FILM' 선정작이라고 한다. 됐고, 일단 재밌다. 책을 읽다보면 시끌시끌하고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집밥 먹는 셰어하우스의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마치 시트콤처럼. 개인적으로 한국 소설은 김진명 작가님의 글자전쟁 이후 들춰본 일이 없었는데 괜찮았다. 사실 평소 일본 소설만 주로 읽다보니 내 주제에 할 소리가 아니긴 하지만 '호흡이 긴가' 싶기도 했다. 무슨 느낌이었는가 하면, 이쯤에서는 마침표가 찍혀야 하는데 왜 아직도… 하는 생각과 함께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와 당황했다. 하지만 곧 괜찮아졌다. 여전히 문장이 짧은 글이 좋지만.
혼밥에 지쳐 집밥의 그리움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싶거나, 냉혹한 삶에 치여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일상의 불운을 위로 받고 싶다면 필히 들춰보기를 권한다. 혼밥에 지친 나머지 간접적으로 나마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만끽해보고 싶다면 역시. 이 책을 읽다보면 셰어하우스를 찾아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게 맞다. 혼자 취미생활 하는 걸 즐기고, 거의 모든 생활을 혼자 하는 나도 세상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절절히 느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