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쥬디 할머니 - 소설가가 사랑하는 박완서 단편 베스트 10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친구에게 최근에 요즘 무슨 책 읽냐고 물었더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를 읽으려 한다고 했다.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이라 누구나 아는 책이지만 제대로 완독한 적이 없기도 하고 지금 읽으면 다른 느낌일 것 같다고 했다. 운 좋게 그 직후에 나도 박완서 단편 소설집인 <쥬디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 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한 줄로도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책 한 권으로 쓸 수 있는지 감탄한 기억이 난다. 이번 단편 소설집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그런 감탄을 느낀다.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할아버지가 아기를 데리고 고군분투하는 <애 보기가 쉽다고?>. 한참을 절절매고 아기를 달래고 먹여도 지나간 시간은 고작 몇 분. 한참을 데리고 다니고 멀끔한 두 사람이 꼬질꼬질해지는 데 걸린 시간은 또 고작 몇 시간. 주인공의 겉모습부터 행동까지 변하는 그 몇 시간의 이야기는 독자도 같이 진땀 흘리고 몰입하게 한다. 그 여정 속에서 마주치는 주인공과 대비되는 배경과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은 서늘하게 보여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서는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하는 이야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형님에게 자기 아들의 죽음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 시대의 아픔과 역사를 담았다.
한기가 드는 집에 살며 겨우 벌고 겨우 먹어도, 아픈 동료를 챙기라 말하고 이불 속에서 온기를 가질 사람을 필요로 하는 <도둑맞은 가난> 주인공. 아직 젊은 나이에 오른쪽 어금니에 틀니를 하고 미국으로 떠나는 여자를 배웅한 뒤 틀니를 한 오른쪽 턱이 아파 틀니를 빼도 그 고통이 가시지 않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주인공.
가난을 빼앗아 간 부잣집 아들이 떠난 뒤 그 집에 남은 여자와, 틀니를 빼도 턱이 아파 틀니를 탓할 수 없는 여자가 자신의 현실을 마주한 순간을 읽으며 내가 과연 상상할 수 없는 차가움과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제목만으로도 유명한 작품부터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까지 한국 대표 소설가들이 뽑은 단편들로 엮은 이 책으로 지난 한국 사회부터 내가 사는 지금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