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어왕

suy_65


  한 때 자해를 하곤 했다. 기껏 그래봤자 커터 칼 같은 우스운 것 따위로 왼쪽 손목 안쪽을 여러 차례 그어 내리는 것이었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에 죽고 싶어서 그었고, 다음엔 살고 싶어서 그었다. 처음에는 새까만 새벽까지 혼자 숨죽여 울다 지쳐 너덜거리는 얼굴로 그으면, 심장은 머리 뒷골이 울리도록 거세게 발버둥을 처대서 마치 귓불까지 들썩이는 느낌이 들곤 했고 바들거리며 얕게 떨리는 손끝엔 두려움이 살아있었다. 다음엔 이미 짠 기에 흠뻑 찌들어 빡빡해진 얼굴은 어떤 표정도 담지 못한 채, 소독해서 미리 준비한 칼로 손목을 그었다. 피가 흐르면 잠깐 보다가 깨끗이 닦은 후 갈라진 상처에 소독하고 밴드를 붙었다. 그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하게 마음과 머리에 힘이 빠져 편안하게 잠들었다. 죽으려고 했던 것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이 몇 번씩 반복되었고, 그 당시엔 자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사실 자해였음을 안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저 하루 종일 죽은 사람과 같은 나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평범한 방법이었을 뿐이었다. 뛰는 맥박을 확인하고 나면 하루 종일 바글바글 뜨겁게 끓던 냉각수가 차분히 식어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것을 전혀 몰랐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자해의 이유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니었고, 의식적으로 숨긴 것도 없지 않았으니까. 아주 나중에 내가 직접 보여주며 얘기하기 전까지, 매일 아침 마주앉아 정수리와 어깨를 맞대고 식사를 했지만 어머니조차 아무것도 알지 못 했다. 비몽사몽한 당신의 정신 하나 차리기 정신없는 아침에, 피로에 젖어 가라앉는 몸뚱이와 계속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 그 사이 칙칙하고 좁은 시야로 나의 그 작은 구석을 날카롭게 잡아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아주 나중에, 보여주기 위해 내민 나의 손을 어머니는 꼭 잡았다. 엄마도, 나도 울었다. 엄마는 꾹꾹 삼키며 울었고, 나는 펑펑 목 놓아 울었다. 엄마는 악착같이 눈물을 잡아내며 그 순간의 내 얼굴과 표정과 눈빛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또렷이 떴고, 나는 눈을 감고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그 속에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는 아주 평범한 가장이었다. 살림과 육아는 엄마가 담당했으니, 이런 것에 무뚝뚝했으며, 알아서 잘 하겠지, 널 믿는다는 그런 생각으로 결국엔 수수방관하는, 유독 독특하고 특이한 사람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아버지였다. 너무 평범해서 내가 그 길을 나아가기 위해 내딛는 수많은 걸음걸음에 아버지는 어떠한 한 마디로도, 눈빛으로도, 토닥임으로도, 어떠한 형태로도, 형상으로도 없었다. 혹여나 내가 놓친 게 아닐까 고개를 내빼고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아주 나중에 아버지는 변명하듯 나를 바라보지 않고 괜히 다른 곳에 시선을 두면서 선명하지 않게 흘리며 말했다.

  '원래 그땐 다 누구나 그래.'

  그것이 아버지의 전부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떠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어떠한 자식으로서 믿었는지 결코 모르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모르는 아버지만의 어떠한 신념으로 가만히 지켜만 본 것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단지, 그저 수많은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온 나의 그 긴 길을 돌아봤을 때, 아버지의 발자국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쌉쌀할 뿐이다. 잘 지내다가도 문득 문득 퍼지는 그 쌉쌀함은 입맛을 차게 할 뿐이다.

  리어왕의 첫째와 둘째의 혀는 나의 이 쌉쌀함보다 더 독한 씁쓸함에 익숙했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의 그 씁쓸함에 그 둘의 혀는 굳어갔을 것이다. 사실 저 두 딸이 원했던 것은 넓은 땅덩어리와 많은 유산보다 아버지의 진심과 진실을 담은 말과 대화, 마음을 헤아려주는 작은 토닥임 따위가 아니었을까. 혹은 그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욕쟁이 할아버지 저리가라 급의 리어왕의 언행과 성마른 성미, 수용은 둘째치고 듣지도 않는 고약한 아집들이 저 두 딸의 이미 굳어버린 혀를 산산조각 내어 서로를 찌르게 만드는 칼이 된 것이 아닐까.



/그외 이야기


  우선 연극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 많아요. 그치만 귀에서 피나면 안되니까 최대한 조절을 할게요. 귀 소중해.

  단지 '리어왕'을 성과 악에 대한 대답,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작품으로 두리뭉실하게 굴려 넘어가기엔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아요. 특히나 현실적으로 와닿지도 않고요. 그래서 저의 관점으로는 기존에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포인트보다 다른 포인트들이 눈에 보였고 체감적으로 감각하면서 봤어요. 두 딸이 선을 넘어 미쳐 돌아가는 막장 스토리 요소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건 리어왕을 비꼬는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리어왕의 언행과 성미가 환장이었어요. 근데 또 더 환장이었던 것은 현실에도 저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 후반부로 갈수록 두 딸이 선을 넘어 막장으로 향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보이는데, 좀 너무 극적인 요소 같다는 느낌이 확 들더라고요. 살짝 권선징악을 짜맞춰야 하니까, 나쁜 놈 완전 나쁜 놈으로 만들고, 착한 놈 진짜 착한 놈으로 만들자! 의도가 너무 보였달까요. 참 셰익스피어는 타고난 극작가였던 거죠.

  리어왕이 조금이라도 두 딸에게 막내한테 하는 것의 절반이라고 해줬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후반부에 두 딸이 남자에게 과도하게 목을 매는 모습이 나오는 것도 저는 뭐랄까 아버지로부터의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지 못해서 발현되는 결핍의 한 모습과 같다고 느꼈어요. 저도 저런 아버지의 어쩌면 어느 아버지나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고 뻔하고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또 다른 상처를 받아 여전히 품고 있잖아요. 절대 잊을 수 없죠. 그래서 저 두 딸은 더 비참했겠구나 싶어더라고요.

  아, 자해와 관련해서는 앞서 썼던 <야, 나도 그래.>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 이유였어요. 그때 참 힘들기도 했고, 많이 성장도 했고,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결국 내 몸뚱이의 한 조각이 되어서 지금의 내가 된 것으로 벗어날 수 없는 것, 그래서 더 소중한 것,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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