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태양

suy_65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괴롭다고 했다. 자꾸 자신과 남을 평가하고 그렇게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며, 좋지 않은 것임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분명 커다란 전체의 아주 작은 조각의 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리를 끊어내지도 못하는 자신이 싫고 한심해서, 짜증이 나고 괴롭고 무기력하다고. 이런 자신이 싫다고 했다.

  저것에 참 많이도 방황했었다. 그것은 외모가 되기도, 내면이 되기도 했으며, 재력이 되기도, 직업이 되기도 했다. 어떠한 신념이나 사상이 되기도, 아주 작고 하찮을 어떤 행동이나 습관, 누군가의 버킷리스트가 되기도 했다. 내 주변에 있길 바랐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 곳으로 몰리는 것처럼 보였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 곳은 분명히 더 행복해 보였으며, 더 낫고 바람직한 것으로 보였다. 분명히 내가 가지고 있고 쥐고 있는, 허나 당시 나의 것인지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은 그런, 나의 것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마치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숴!어느 배우의 대사처럼 나도 저렇게 되면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손에 쥘 수 있지 않을까. 가질 수 있는,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 채, 아니, 애초에 무엇을 그렇게 가지려고 했는지도 모른 채, 불빛에 달려드는 눈 먼 나방이었다.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따라했고, 무작정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으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를 괴롭혔다. 그 곳은 완벽해보였고 나는 모자랐으며, 그 곳은 빛나보였고 나는 칙칙했으며, 그 곳은 화려해보였고 나는 초라했다. 나를 뒤돌아보고 돌보기도 하며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그 곳만 봤고 그 곳의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그 곳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것은 결핍이었다. 특정한 부분에 대한 결핍이 아닌 나 자체에 대한 이해의 모자람. 두껍게 가면만 쌓아올릴 줄만 알던 나는 나의 민낯을, 나체를 볼 줄 몰랐다. 두려움이었고, 낯선 것에 대한 불편함과 어색함이었고, 본질은 사회 학습과 매체 미디어를 통한 세뇌의 결과였다. 눈을 마주하고 끄덕이며 털고 일어나는 것보다 탓을 돌리는 것이 더 쉬웠다. 소독제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보다 환각제를 먹고 고통을 잊은 채 잠에 취하는 것이 더 쉬운 법처럼. 효과는 강력했고,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처럼, 상상하는 그것들이 손이 쥐어질 것처럼 망상에 빠지곤 했다. 진짜 다 나아질 것 같은데, 다 해결될 거 같은데. 결핍을 마주하는 두려움이 클수록, 상상 속 소독제의 쓰라린 고통에 지레 겁을 많이 먹을수록, 그 망상은 더욱 달콤하다. 그저 숨을 쉬고 싶었을 뿐인데. 그렇게 계속 가라앉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알 하나 보이지 않는, 짙은 푸른색은 어느새 새까만 검은색이 되어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발에는 무거운 추가 달려있는 것처럼, 족쇄로 묶인 것처럼 상처와 고통이 달려있어서 더욱 가라앉게 했다. 그렇게 계속 탓만 하며 내려앉는 몸을 놓고 있었다.

  순류를 찾는 역류는 작은 파동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 손끝을, 발끝을, 온갖 나의 살갗을 감싸서 나를 삼켜내는 그 검정색의 물결에 얄팍한 파동을 만들어냈는 것. 물결을 통과해서 내 동공에 닿는 저 빛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은 느낌을 걷어내고, 그 빛을 향해 거품을 만들어내는 남의 파동을 바라만 보는 망상을 끊어내고, 당장 잡히는 물결을 일어서 헤엄쳤다. 작은 파동, 작은 물결, 작은 거품, 그렇게 커다란 나의 움직임은 검은 색의 역류를 만들어냈다. 이거였다. 단 한마디면 될 것을, 단 한 번의 눈 맞춤이면 될 것을, 그렇게 단 한 번의 끄덕임이면 될 것을 오랜 시간 몰랐다. 아니, 오랜 시간 외면했다. 모르는 척 그렇게 무시한 채 어떻게든 겹겹이 덮어 숨기고만 싶어서 남의 가면까지 끌어왔었다.

  한 대사가 이 글을 끌었다. 인간의 모든 결함을 월등히 초월한 녹스 후지타를 향해 기존 인간인 데츠이코는 그 초월성에 대한 맹목적인 선망과 추앙을 하며 환상을 내뱉는다. 그들에게도 초월의 대가로 태양을 마주보지 못하는 절망이, 효율과 이성의 지배에 질식당한 감정의 상실이 있지만 데츠이코는 당장 자신의 결함과 절망만으로 자신의 존재 부정하며, 당장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녹스가 되는 것뿐임을 울부짖는다. 그런 그를 향해 후지타는 차갑게 절규한다. “이런 네가 녹스가 된다고 뭐가 바뀔 거 같아?”

 

 

/이외 이야기

 

  조금 글이 늦었어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음, 하나의 글쓰기 발달 과정이랄까요. 느낌적인 느낌의 표현이지만 제가 그렇게 느끼니까요. 아, 최근 새로운 소식으로는 제가 '브런치'라는 플랫폼에도 서재의 글을 업로드한다는 거죠. 다를 것은 1도 없어요. 그냥 여기는 놀이터라면, 저기는 정돈된 산책길 정도의 차이랄까요. 이렇게 글 쓰는 게 저를 숨쉬게 만드니, 참 신기하네요.

  저 연극을 본지는 꽤 되었어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한 대사가 진하게 마음에 계속 남는 거예요. 이해가 되었고 공감이 되어서 초원하기도 하고 아련도 했달까요. 마치 예전에 썼던 나의 일기장을 본 듯한 그런 여운처럼요. 예전에 비교를  참 많이 했었어요. 뭐 비교가 문제는 아니죠. 비교로 나를 괴롭히는 게 문제죠. 극심하게 살을 빼기를 반복했었고, 남을 한없이 부러워만 하면서 내가 나를 어찌나 못난이 취급을 했던지요. 그렇다고 후회하거나 미운 기억은 결코 아니예요. 오히려 그 길을 걸어 봤기에 지금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요.

  제 신념이나 마인드이기도 한데요. 바꿀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바꾸되,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냥 안아줘라. 딸랑 나 하나라도 완전 충분하니까. 누가 안아줄까 생각하지만 말고 스스로 안아줘요. 이렇게나 까다로운 내가 안아준 것이라면 충분히 훌륭한 것일 테니까. 물론 넌 너고 난 나다는 토핑까지 올리면 환상이죠.

  그래서 지금은 비교말고 영감을 얻어요. 더 나은 나를 위해서 말이죠. 악, 이런 말 하니까 제가 뭐 막 주름 잡는 거 같아서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데, 진짜 그냥 전 말하는 감자거든뇽. 그냥 말하는 감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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