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일의 기쁨과 슬픔

suy_65

 

  나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그 미묘하고도 흐릿한, 그러나 명백히 선명한 경계를 민감하게 경계한다. 저 둘은 다르다. 그러나 얼핏 보면 엇비슷하다. 지상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빛깔은 항상 찰나기에. 그 찰나의 빛깔을 담은 눈을 감고 눈꺼풀아래에 남은 빛의 잔상을 되감아야, 그 여리고 가냘픈 경계를 겨우 잡아낼 수 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빛의 잔상을 되씹어본다. 대견한 나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순간을 잡고, 어느 날은 한없이 부끄러운 한숨을 내쉰다. 복잡한 머리를 더욱 어지럽히기도 하며, 번뜩 커다란 번개가 그 자리를 휩쓸고 깔끔한 상쾌함을 선사하곤 한다. 그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경계는 우습게도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 경계의 커다란 기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가, 주지 않는가. 그 경계는 참으로 미묘하고도 명백히 선명하다. 밑에 깔린 환경과 상황과 상대와 그 관계의 복잡함과 명백함, 각자의 위치. 얽히고 얽힌 토핑을 얹어야 비로소 완성이니까.

  한 직원이 제안한 부탁을 거절했다. 내가 감당하기에 뻔히 어려운 것이었고, 꾸역거리며 삼켜낼 과중의 아찔함이 보였으며, 상식적으로 그러한 부탁을 받아 줄 경력도, 입장도, 위치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의 의견과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으며, 한없이 외로웠던 이 자리를 온기로 채우기 위해 흘렸던 나의 많은 눈물과 절박했던 발버둥의 기억을, 그 직원은 자신의 편의와 이익에 눈이 가려 보지 못했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기에 거절했다. 거절했고, 나는 그 직원에게 이기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당황이 머리를 후덥지근하게 덥혔다. 후끈한 허공에 끈적거리는 생각이 생각을 물고 얽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빙글빙글 도는 생각의 중심을 바로 잡으려 혼자서 한참을 애썼다. 그렇게 바람이 불어왔고, 바람이 몰고 온 신선한 공기의 흐름은 후덥지근한 공기덩어리를 쓸어냈다. 깔끔한 산뜻함이 생각의 중심을 잡아 눈앞에 들이댔다. , 차라리 이기적일래. 오히려 좋네. 직장에서 이기적이라는 말.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은 분명히 나눌 필요가 있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모여 앉아있는 공적의 영역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마주보고 얼굴을 쓰다듬는, 서로의 상처를 내비쳐 토닥이는, 가만히 아무 말 없어도 그저 편안한 사적의 영역. 이 둘의 경계를, 두 영역의 본질적 목적의 차이를 또렷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을 위해 모였다면, 일이 우선이고, 공적 업무 처리가 우선이다. ‘일에 실수가 많다.’등 일에 대한 얘기엔 귀를 기울이고, 정당한 업무 비판은 받아야 들어야 한다. 그러나 간혹 사적인 영역을 공적인 영역까지 끌고 들어오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사적인 것들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나는 단 하나인데, 누군가에게 버릇이 없는 직원이, 이기적인 직원이 되기도 하며, 친절한 직원이, 얌전한 직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영역을 흐리는 이들로 인해 휘둘려 영역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순간, 천둥 뒤에 걷잡을 수 없이 밀어 닥치는 태풍과 같이, 온몸으로 떠받아내야 할 파도가 밀려온다. 그것은 일말의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업무과중이 될 것이며, 끝없는 야근으로, 그렇게 소중한 저녁과 가족과 친구와의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지끈거리는 두통이, 손끝이 떨리는 우울과 분노가, 무너지는 어깨와 척추가 되기도 할 것이다.

  사적인 것을 공적인 공간에 끌고 오는 이들이 있다면, 야, 가볍게 털어 무시해. 왜 이래, 안 그래도 이미 해야 할 업무들이 많아. 어쩌면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단지 이기적이라는 말. 저런 얘기라면 기꺼이 나는 이기적직원이 되겠다.

  울고 웃은 당신의 지친 퇴근길, 사실은 업무보다 사람 때문이지 않을까. 그치, 어찌 업무와 사람을 케이크 자르듯이 싹둑 말끔히 잘라낼 수 있을까. 그저 타인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어리석은 몸짓에 중심을 잃고 한 쪽으로 휩쓸리지 않기를, 자신을, 그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외이야기

 

  연극은 삼삼하고 잔잔했어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른하지만 군데군데 박힌 소금처럼 위트도 섞여서 편안한 그런 연극. 그래요. 솔직히 말하면, 맞아요. 제 취향저격은 아니었습니다. 근데 썩 괜찮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그날 좀 지치고 피곤했거든요. 뭐, 특별한 게 있던 것은 아닙니다. 직장인이라면 지극히 평범함에 속한 상태라는 거, 알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도 있고, 무엇보다 누구나의 것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의 평범함이 썩 흥미로운 재미로 다가왔어요.

  거참, 직장을 다니다보면, 뭐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말이지 더욱이 공과 사의 경계가 중요하다고 느껴요. 근데 그거 참 어렵죠. 중요한 것이고, 잃고 싶지 않은, 놓고 싶지 않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어려워요. 그래서 많이들 고민하고, 공감하고, 위로 받고, 확인 받고 싶은 거겠죠. 뭐, 사실은 저한테 얘기하고 싶은 말을 적었어요. 나한테 와닿은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남겨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달까요. 나에게 했던 말들이 누군가에게도 닿는다면 그거야말로 영광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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