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쓰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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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을 본 직후, 핸드폰 노트장에 순간적으로 느낀 신기루같은 감상을 쏟아내곤 한다. 한마디로 진짜 쏟아내는 행위다. 뭐 문장의 완벽성, 단어의 적절한 선택 따위는 나중에 다듬기로 하고, 그저 초반의 날 것의 감상을 남기고 싶은 경향인데, 아마 나에게 그것이 원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트장을 열고 곰곰이 뜸을 들이다가 여성취향을 저격하는 미남들의...’까지 쓰고 돌연 멈췄다. 저 짧은 미완의 감상에서 관극 직후의 나의 불만족이 아주 잘 보인다. 잠깐, 머리가 복잡해서 오히려 하얗게 텅 비었다. 뭔가 이상했다. 너무 피상적인 상태라는 기분이 들었다. 왜 이리도 불만족스럽지? 첫 감상을 쏟기 전에는 원래 잘 하지 않는 짓인데, 영 찜찜해서 인터넷 창을 열어 서칭을 시작했다. 연출가와 배우가 한 인터뷰 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중반도 못 읽었을까. 지하철에 앉아있었는데, 누구야, 누가 내 뒤통수를 친 거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시작부터 놓치고 있었다. 이 연극의 핵심.

  이미 이 연극은 본질과 핵심을 관객에게 계속 노출하고 있었다. 이미 보여줄 대로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흔한 흑막 같은 것은 없었다. 그건 바로 이 연극의 배경이었다. [나는 가석방 심의를 위해 심의관에게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거. 이게 이 연극의 핵심이었다. 연극이 시작함과 동시에, '나'가 말을 하는 순간부터 그 말이 끝날 때까지, 관객은 심의관이 된다. 우리는 심의관인 것이다. 관객, 아니 심의관은 오롯이 '나'가 하는 말을 '듣는다'. 질문을 먼저 시작하고, 심문으로 추궁하니 우위에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질문에 대답은 '나' 혼자 할 뿐이다. 심의관이 아는 모든 것은 그저 '나'의 입에, 말에, 진술에, 이야기에 달려있다. 그래, 과연 승리패는 누구의 손에 달려있는 것일까. 

 

  연극은 심의관의 심문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에게 수없이 들었을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한다. 엄격한 척, 심각한 척, 중심축은 이미 기울어 있는 척하지만, 심의관은 진짜 동기하나 모른다. ‘그래서 당신이 범죄를 저지른 진짜 동기를 알고 싶습니다.’. 동기는 행동의 이유이다. 이유는 왜가 되고, 심의관은 에게서 그 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심의관에 완전 몰입되어 있던 것이다. 를 듣고 싶었는데, 아니, 얘기를 안 해주잖아. 혼자 그 때문에 너무 괴로웠다. 그러니까 저렇게 초반에 불만족스러웠던 것이다. ‘100분 동안 덤덤하고 순종적으로 다 말을 해준다. 사실 정확히는 해주는 척을 한다. 은밀하게 심의관의 질문은 피해가면서 말이다. ‘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수많은 말에, 진술에, 이야기엔 정작 는 없다. ‘에 대한 대답은 만무하고 라는 것조차 없다.

  왜 는 저렇게 를 사랑하며, ‘에게 몰입하며, 집착하며, 결국은 를 소유하고자 하는가. 를 귀찮아하면서 완전히 놓지 못 하는가. 혹은 그렇게 흥분되는 범죄를 와 같이 하면 가 떠안을 위험이 많아 보이는 데도 왜 굳이 같이 하려 하는 것일까.

 

  왜?

 

  연극 보는 내내 나는 심의관이었. 아니, 그니까 왜 그런 거냐니까?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유가! 그니까 왜 그랬는데? !!! 그리고 는 충실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네가 아는 것은 고작 나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뿐이잖아? ‘의 말대로, 아니 정확히는 가 얘기하는 의 말대로, 똑똑한 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한 정확히 알지 못 한다. 완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 한 상황일 수 있다. ‘가 말한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실일까. ‘가 모든 진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그저 허상인 게 아닐까. 에이 설마, 하며 결국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다. ‘가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거야? 과연 를 완전히 소유하기 위해서 그렇게 전략적으로 머리를 굴렸을까. 애초에 그랬을까. 아니면 중간에 바뀌었을까. 아님 긴 시간이 지난 지금, ‘는 자신의 생각과 과거와 흔적을 왜곡하고 있는 것일까.

  ‘는 계속 새장에 있지 않고 날아 달아나는 를 새장 속에 가두기 위해, ‘를 완전히 소유하기 위해 살인에 동조한다, 동조했다고 한다. ‘의 전략에 완전히 빠져 속은 를 보며 는 드디어 완전한 소유를 하게 되었다며 찬란의 노래를 부르며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게는 정말 해피엔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는 몇 년 전 칼에 찔려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제 다른이들은 가 아니면 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으니까 가 그토록 바라왔던 완전한 소유에 도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34년이 지나 이미 뭔지 모르게 썩어 문드러져버린 '그'의 담배 한 갑처럼, ‘와 완전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소유를 하게 된 는 오래전부터 생기를 잃고 썩어 문드러져버렸을 것이다.

 

  새는 본래 나는 존재이다. 철새든 텃새든 새는 날아야 산다. 그런 새를 잡아 새장에 가두는 것은 곧 새의 생명을 손에 쥐어 죽음을 먹이는 것과 같다. 새장에 가두어 놓고 새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다고 신나하는 것은 똑똑한 의 어리석음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마지막의 가 행복해 보였어야 했는데, ‘는 분명 슬퍼하고 있었다. 이미 고장난 시계를 34년 전으로 돌리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의 손에 잡히지 않고 훨훨 날아다니는 가 있는 그 때로.

 

 

/그외 이야기

 

  이 뮤지컬이 인기가 많더라고요. 끊이지 않는 인기, 수많은 재관극 관객들, 인기스타 배우들의 등용문의 비결이 궁금한 거 있죠. 예매를 덜컥한 이유는 그저 저런 싱거운 이유들이었어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저도 납득 할 수밖에 없던 거 있죠. 인기있는 건 이유가 다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냅니다.

  연극과는 별개로 연극 연출은 첨부터 취향 저격 당했어요. 탕탕.. 조명과 원형 무대를 굉장히 잘 썼더라고요. 원형 무대가 생각보다 까다로웠을 텐데, 동선도 깔끔했고, 조명 사용하는 건 감탄 그 자체였어요. 취향 저격 제대로 당함.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동작, 외모, 목소리와 가창력, 감정 전달력 모두 좋았습니다. 그런데 가끔 대사나 가사를 먹거나 흘려서 전달이 제대로 안되기도 하더라고요. 중간 중간 무슨 말이었는지 안 들리고 놓친 것들이 있어서 그럴 때마다 '응? 나, 나 못 들었어. 뭐라고? 뭐라한 거야? 다시 말해줘.'라며 칭얼거릴 뻔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면 프로그램북을 사는데, 제가 인터넷에서 찾아봤던 저 인터뷰글 같은 짧은 이야기를 넣어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내가 산 것이 포토북이었는지, 프로그램 북이었는지 처음에 사고 받자마자 순간 혼동이 와서, 쭈뼛거리며 프로그램북 맞지?라며 확인했어요. 인터뷰 참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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