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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ㅣ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인간이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서의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젊은이들의 국내 이탈 움직임은 이전 시대 사람들의 선택과는 차이를 보인다. 끝없는 경쟁을 유도하는 이 사회에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알맞은 삶을 선택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인 ‘계나’는 20대 여성으로, 한국에서 적성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그녀의 직장은 역삼역에 있는 금융사로, 그녀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며 삶에 회의를 느낀다. 서울 2호선 신도림~강남 구간의 출퇴근 시간 지하철은 ‘지옥철’이라 불린다. 나 역시 그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이때의 숨막힘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한국이 그렇게 싫은 이유가 뭐니? 한국 되게 괜찮은 나라야.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1인당 GDP를 따지면 20위권에 있는 나라야. 이스라엘이나 이탈리아와 별 차이 없다고.”
“아니, 난 우리나라 행복 지수 순위가 몇 위고 하는 문제는 관심 없어.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런데 난 여기서는 행복할 수 없어.”
“하지만 네가 호주에서 살아본 것도 아니잖아. 여기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거기 가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어. 동남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 같은 생활수준을 누리면서 사는 건 아니잖아.”
“어차피 난 여기서도 2등 시민이야. 강남 출신이고 집도 잘 살고 남자인 너는 결코 이해 못해.” (본문 61쪽)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와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잘못된 삶’이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방향이 다른 삶’은 있을지언정 ‘잘못된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살아가는 한, 누구나 자기 삶을 갈고 닦으려 애쓸 뿐이 아니겠는가.
좌충우돌 호주에서의 삶을 살아가며, 계나는 비로소 자신이 ‘2등 시민’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재함을 느낀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지만, 계나는 혼자 힘으로 이것들을 헤쳐나가며 자신의 성장을 경험한다.
그녀는 말한다. 자신은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물건을 팔거나 손님에게 허리를 굽히더라도, 존엄성과 자존심을 팔고 싶지는 않다고. 이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뼈 아픈 지적이다. 청년 실업이 고질화된 작금의 상황에서, 기존에 취업한 20대는 속한 조직으로부터 복종을 요구받는다. 한편 취업을 원하는 20대는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자기소개서를 끊임없이 내면화하고 있다. 이때 우월한 고지에 서 있는 조직 입장에서, 계나는 언제나 대체 가능한 인력일 뿐이고 그녀의 ‘자존심’이나 ‘존엄성’은 설 곳이 없다.
이러한 환경이 싫어서, 이곳에서 탈출하여 외국에서 자신의 살 곳을 모색하겠다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못 먹을 걱정 없지, 전쟁 발발 위험도 희박하지, 대부분 대학까지 교육 받지, 민주화된 세상에 살지. 너희들이 무슨 고생을 해 봤느냐.’는 기성세대의 비난은, 언젠가 우리가 듣고 읽어본 어느 이야기의 내용과 닮아있지 않은가.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누군가에게 태평천하인 시공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이제 이국(異國)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자발적으로 다른 국가를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는 공감을 가지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민주적·다원적 사회의 출발점 아닐까. ‘불안정’과 ‘미완성’은 잘못된 삶의 증거가 아니라, 누구나 겪는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다. 자신의 삶을 새로이 만들어갈 계나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신 달려줄 수 없는 각자의 길에서, 우리는 그저 서로를 묵묵히 응원하고 지지하고 박수 쳐 주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