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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와 버들 도령 ㅣ 그림책이 참 좋아 84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 202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100쪽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그림책들이 그러하듯, 얇은 두께와 상관없이 오래 오래 쥐고 읽게 된다. 이태준이 쓰고 김동성이 그린 <엄마 마중>을 닳도록 읽었는데, 백희나의 <연이와 버들 도령>도 그만큼 읽게 될 것 같다.
전래동화 감상을 찾아 읽다 보면 의외로 <여우누이전> 같은 이야기는 무섭지 않은데, <연이와 버들 도령> 설화는 무서웠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도 그랬다. 동화책보다도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했는데, '죽음'이 나와 두려웠던 걸까? 어린 나이에 겪는 그 모진 고생이 소름끼쳤을까? 겨울에 아이를 내보내는 이가 너무너무 싫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모든 무서움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들었다.
매서운 겨울바람과 눈 속에서 연이를 데려오고 싶다고 생각할 때쯤 연이와 버들 도령이 만나고, 서로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그들이 애틋해지고, '나이 든 여인'으로 상징되는 '세계'가 그들을 갈라놓고, 하지만 연이는 그런 강제적인 이별에 굴복하지 않는다. 연이는 치마를 입고 버들 도령은 도령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얼굴은 닮았고 별개의 존재인 듯 하면서도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다.
실제 겨울 풍경에 닥종이 인형을 두고 찍어낸 장면들은 한여름에 읽어도 주변 온도가 스윽 내려갈 정도로 서늘하고, 차고, 춥다. 연이는 울지 않지만 내가 울고 싶고, 연이는 주저앉지 않아도 내가 철퍽 앉아 아무에게나 원망을 토해내며 울부짖고 싶다. 죽어버린 버들 도령을 보고 연이가 차마 울지도 못할 때, 사실은 내가 울었다. 남겨진 슬픔을 아는 어른에게 이 장면은 정말 시리도록 아프다. 버들 도령이 다시 살아난 뒤에야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선 더 많이 울었다. 고통, 미움, 애정, 슬픔, 삶, 죽음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마음을 뒤흔들고, 또 그 마음을 위로한다.
세밀화 책을 좋아해 집에 여러 권 두고 있는데, 사진이었으면 아무리 잘 찍었다고 생각해도 두어 번 보고 넘겼겠지만 세밀화는 다르다. 공들여 섬세하게 그려진 세밀화는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열 번, 스무 번 잎맥과 나비 날개 무늬, 꽃잎에 아른거리는 햇빛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도 세밀화 같은 책이다. 멀게 잡힌 장면들은 풍경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인물이 크게 잡힌 클로즈업 장면들은 어쩌면 실제 인물보다도 이렇게 역동성이 넘치나 싶다. 그림(과 사진)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작가가 재해석한 동화를 원전과 비교해보는 일도 즐겁다. 욕심 같아서는 백희나 작가가 더 많은 동화를 이렇게 재구성해주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