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양육 -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읽고 소통하는 법
셰팔리 차바리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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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나르시스) 이야기를 읽고 큰 의문에 잠긴 적이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되풀이해 말해보자면, 아름다운 소년 나르키소스의 어머니는 일찍이 예언을 하나 받는다. '자기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오래 살겠지.' 그리고 스스로를 모른 채 자라난 이 소년은 투명한 샘물에 비친 제 얼굴에 반해 상사병으로 숨을 거둔다. 나는 '아니, 거울만 보여주면서 키웠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니야?'라는 마음에 격하게 반발했다. 신화에 담긴 은유와 상징을 깨닫기에는 어려도 한참 어렸던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이 신화가 '헛된 자기애'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았다. 



1. 나를 알고 나서야 타인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 

2. 그 타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독립된 개체이며, 이걸 알아야 자기애를 넘어서서 타인을 진정 사랑할 수 있다. 

3. 그러나 아이가 자신을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막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부모였다. 

이렇게 보자면 나르키소스 신화는 '자기 발견 - 타인에 대한 인식 - 그것을 막은 문제적 양육'에 대한 비유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걸 배운 건 대학 교양 강의에서였는데 그때 우리는 교수님에게서 꽤 유용한 조언도 함께 얻었다. 취업을 앞두고 자기계발서 같은 실용서적을 많이 읽고 있겠지만, 때로는 정신의학/심리학이나 인간관계론, 심지어는 육아법을 다룬 책이 더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늘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강의였기 때문에 누군가 꽤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질문을 던졌다. 평생 아이를 낳을 일 없고 교육업에 종사하지도 않을 사람에게 육아팁 같은 게 의미가 있을까요?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고 아마 같은 장소에 있던 다른 이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육아서적에 아기를 목욕시키고 분유 온도를 맞추는 방법만 나와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모두 아이였고 그 아이는 지금도 우리 마음 어딘가에 있어요. 어른이 된 자신이 그 어린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일 수 있을까요? 다른 방면으로도 생각해봅시다. 부모된 이들만 아동과 어린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회가 건강합니까?'



이런 이유에서 나는 가끔 자녀교육/육아서적 카테고리에 있는 책을 찾곤 하며, <깨어있는 양육>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교수님처럼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은 정신 분야에서 귀하게 여기는 값진 경험'이라 말하고 있으며, 바로 그런 관점에 입각해 도움말을 건넨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그대로 발췌해본다. 아이는 저절로 자라지 않으며 부모는 부모가 되기 위해 자신과 직면해야 한다. 부모가 아닌 이들도 어른이 되려면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과거의 노예이며, 아이들은 그 과거를 곧잘 불러낸다. 왜냐하면 분명 잊힌 것 같은 사건들도 우리가 마주하고 그 사건을 둘러싼 감정들을 해소하기 전까지는 무의식 차원에서 계속 우리를 조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심리 치료사로 일하다 보면 40대, 50대, 60대 남녀가 아직도 정서적으로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모의 분노와 멸시, 방치, 억압의 메아리에 갇혀 있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갈등은, 그 대상이 아이든 배우자든 아니면 다른 어른이든, 어느 정도는 우리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갈등 상황에 어른은 존재하지 않고, 떼쓰는 아이들만 있는 셈이다. 이를 양육에 적용하면 여러 면에서 애가 애를 키우는 꼴이다.



이 책은 전작 <깨어있는 부모>와 이어진다. 여기서는 딱 한 문장만을 가져오고 싶다. 우리는 '아이들의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불안'에 반응한다. 저자가 이 사실을 독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책을 썼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이 한 줄을 많은 이들과 공유했는데, 자식이 없거나 비혼인 이들조차 '아이'를 '남(타인)'으로 바꾸면 그냥 내 이야기인 것 같다는 반응을 돌려주었다. 우리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부모와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불안을 먼저 치료할 필요가 있다. 나도 모르게 굳어진 행동패턴, 낡은 사고방식, 해묵은 상흔, 오래된 습관들로 뭉쳐지고 굳어져버린 응어리들이 해소된 다음에야 타인을 왜곡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깨어있는 부모> 마지막 장에서 와서야 훈육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깨어있는 양육>은 그 훈육에 대한 실전상황 대처법 정도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저자는 우선 용어의 개념부터 명확히 하고 넘어간다. 훈육(訓育, 가르칠 훈-기를 육) = discipline의 어원을 disciple(추종자, 복종)이 아니라 disco(배우다)에 두자고. 전자가 '징계에 따른 복종'이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후자는 이 일이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배움(learn)'임을 강조한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에 관해 부모의 책임과 가정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그것이 '처벌'이나 '징계'라는 방식으로만 나타난다면 장기적인 효과가 없으리란 것은 자명하다. 그러면 훈육이 필요한 상황, 즉 아이가 일탈행위와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부모와 어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깨어있는 양육>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적절한 조언을 해주려 노력하면서 동시에 <깨어있는 부모>에서부터 반복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 불량하게 구는 아이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지금까지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어쩌면 부모의 불량한 정서 상태를 먼저 치유해야 하는 건 아닐까? 



가령 부모가 아이에게서 존중과 신뢰를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누구나 어릴 때 같은 행동을 하고도 어떤 때는 혼이 나고 어떤 때는 그냥 넘어간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되고 직업을 가지고 직장에서 일을 해도 명확하고 일관된 기준이 없으면 혼란스럽다. 하물며 부모가 절대적인 세상에서 사는 아이가 매일 복불복을 하는 상황에 놓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저자는 기분이 태도가 되는 일, 특히 감정에 따라 '된다/안 된다'를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일을 매우 경계한다. 훈육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문제는 안정적이고 합리적이고 균형잡힌 인간이 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에 있다. 깨어있는 부모가 되어 깨어있는 양육을 하려면,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점검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예리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의 피곤과 오래된 습관이 겹쳐져 무의식적으로 익숙한 언행이 튀어나와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미숙한 에고를 단련해 아이와 함께 커나가는 어른이 되려면 우리는 용기있게 자신과 직면해야 한다. 아이가 낳아놓으면 저절로 크는 존재가 아니듯이,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한다고 해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정신적인 토대를 쌓는 것에는 자녀나 부모나 아이나 성인이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우리는 '배우고 익히며 또한 성장하는' 것이다. 



나와 또래들은 대부분 지극히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훈육되었고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식을 제일 익숙하고 편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네가 ~하면 나는 ~하겠다'는 말을 수백 수천 번 들어왔다. 배운 대로 물려주는 것이 일견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일컬어 '죄수와 간수 양육법'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네가 숙제하지 않고 게임만 하면 휴대폰을 압수할 거야. 하지만 네가 숙제를 하면 놀이공원에 데려가마. 아이와 어른, 자녀와 부모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이 대화를 복기해보자. 이게 거래가 아니면 무엇인가? 죄수의 행동을 감시하며 그 행동에 따라 보상 혹은 처벌을 내리는 간수와 다를 것은 또 무엇인가? 이런 통제를 받으면 인간은 무엇을 빼앗기거나 반대로 무엇을 얻는 것에만 집중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게 된다. 



물론 이런 방법이 필요할 때도 많겠지만, 모든 상황에서 통하는 만능해결법이 아님에도 우리는 거의 평생을 이런 대화를 나누며 살아왔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은 자기조절능력을 획득하지 못한 채 타인의 벌과 상에 끌려다니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내적 동기가 아닌 외부의 통제에 휘둘리다 보면 자신의 중심을 세울 수 없다. 나의 바람이 진정 나의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게 되리라. 그래서 저자는 실질적이고 실제적으로 위험이 발생하는 순간(아이가 도로에 뛰어들거나 남에게 피해를 줄 때)이 아니라면, 부모가 과하게 개입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를 경험하게 하라고 충고한다. 배고파서 허기를 느껴야 밥을 찾지 않겠나. 식사하지 않는다고 억지로 대가를 제시하면서 밥을 먹이거나 벌을 주는 것은 순간만 모면하는 방법에 불과하다. 책에는 이런 실제적이고 세세한 카운슬링이 가득하다. 양육, 훈육,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독립적인 한 개체가 자신의 인격을 완성시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도록 기르는 것이 양육이라면, 그 양육의 주체도 단단하게 자립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따라서 저자는 아이의 모든 문제를 부모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하며, 아이에게 모멸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엄하게 말하는 동시에 괴로운 순간을 잠시 넘어가게 만드는 사탕발림도 단호하게 끊어내고자 한다. 아이가 안 좋은 일을 겪어 곤란해하고 있을 때 회피를 택하는 것은 쉽고 해결로 나아가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에게 사탕과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휴대폰과 게임기를 쥐어주고 '참 속상하겠다'며 달래기 바쁘다. 아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어서 어른들이 먼저 회피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분명 존재하고, 이는 육아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힘들고 괴로운 일을 모두 막아낼 수는 없는데 그 안 되는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우리는 진상이 되고 만다. 부모로서도 게다가 인간으로서도. 하여 저자는 자녀와 교감하되 그의 성장과 발달을 막지 말라고 거듭해 이야기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가 정신적으로 자랄 때 부모도 함께 커갈 거라고. 부모가 먼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존중한다면 아이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혐오하지 않고 스스로를 이해할 거라고. 부모가 아이와 연결되어 있을 때 양쪽 모두 잘 '배울' 수 있다고.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지켜보기 Witness

물어보기 Inquire

중립 지키기 Neutrality

협상하기 Negotiate

공감하기 Empathize

해결하기 Resolve

부모와 아이가 모두 만족할 '윈윈전략 WINNER' 및



'내 아이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한 10계명'은 책을 읽는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부분이다. 특히 10계명은 대인관계와 직장생활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 성인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법하다. 욱하지 않기, 나에 대한 공격으로 오해하지 않기, 잠시 타임아웃 주고 호흡하기,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등은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 가능하고 실제 내 잘못된 행동 교정에도 꽤 효과가 있었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 아이는 어른을 통해 이 세상을 구성한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잘 생각지 않는 것 같다. 부모도 자식으로 인해, 성인도 어린이로 인해 자신의 세계를 재구성한다. '양육'이란 제목에 얽매이지 않고 부모가 아닌 이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저자가 쓴 '내 아이의 다짐'이라는 글에서 '내 아이'를 '타인'으로 바꾸어도 뜻은 무리없이 통한다. 

내 아이는 내가 색칠할 도화지가 아니며,

내가 다듬을 다이아몬드도 아니다.

내 아이는 세상과 공유할 전리품이 아니며,

내 영예로운 훈장도 아니다.

내 아이는 하나의 견해나 기대 혹은 환상이 아니며, 

나를 비추는 거울도 내 유산도 아니다.

내 아이는 내 인형이나 프로젝트가 아니며,

내 노력이나 소망도 아니다.


​내 아이는 더듬거리고, 비틀거리며, 

시도하고, 울고, 배우고, 망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아이 아닌 어른도 마찬가지다. 부모도 다르지 않다. 누구나 더듬거리고 비틀거리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울고 망치면서 다시 도전할 수 있다. 다들 그렇게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갈 수 있다. 아이를 기르고 있는 많은 보호자들과 교육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많이 찾는 감정코칭 책이겠지만, 그저 나를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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