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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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설과 영화/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버릇처럼 늘 고등학교 문학시간이 떠오른다. 문학의 갈래(장르 구분)를 공부하던 날, 계절은 가을이었고 날씨는 맑았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하필 5교시라 짝이 거의 가수면 상태에 빠졌던 기억까지 생생하다. 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는 일이 잦은가 하면, 우리가 그날 국문학에 관해 '극과 서사 ≒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라는 개념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느 서사든 주인공의 '자아'가 있고, 그와 대립하는 '세계'가 있는데 어느 한쪽이 완전한 우위를 점하지는 않는다. 모든 극과 소설을 이렇게 일률적으로 다룰 수는 없겠지만 수업 마지막 10분 동안 우리는 <콩쥐팥쥐>와 <인어공주>부터 <해리포터>와 <난쏘공>에 이르기까지 아는 이야기를 죄다 꺼내며 그 이론을 검증(?)했다. 



여기에도 '세계'와 갈등하고 있는 '자아'가 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2016년을 사는 열다섯 은유가 느리게 가는 우체통 시스템을 통해 1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5년 평생을 데면데면하게 지내온 아빠는 갑자기 재혼을 선언해 은유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기고, 이 '엿 같은 상황'을 견딜 수 없는 은유는 독립(a.k.a 가출)을 결심한다. 그런데 은유 말고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이 편지에 답장이 왔다. 바로 그 다음 페이지에서 종이 색깔이 연하게 물든 분홍보라색으로 바뀌고, 또다른 은유가 나타난다. 이 은유는 국민학교(!) 3학년이고 1982년에 살고 있으며 따라서 성실하게 '-읍니다' 맞춤법을 지켜가며 말을 걸어온다. 여기까지 읽고 책배를 보니 흰색과 보라색이 교차한다.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편지와 편지로 이루어져 있구나. 나는 순식간에 단짝 친구와 교환일기를 주고받던 중학생으로 돌아갔다.  



안 그래도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열다섯 은유가 잔뜩 열이 올라 너 누구냐며 따지는 편지를 부치자, 이번엔 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다. 저쪽 세상의 국민학생 은유가 그새 2살을 더 먹은 것이다. 이미 재개발되어 사라진 주소, 편지에 동봉된 1982년산 500원짜리 동전과 위조지폐 같은 2000년대 천 원 한 장, 인터넷 검색으로 과거를 알아보는 소녀와 미래에서 도착한 예언이 실현되어가는 것을 목격하는 아이, 간첩과 암호문이란 무시무시한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국민학생과 코스프레니 사이코패스니 하는 외래어가 입에 붙은 중학생. 두 동명이인은 서로를 미친 사람 취급하다가 이내 자신들이 쓴 편지가 시간을 건너 여행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며 대흥분한다. 과거에 있는 은유야, 너 대단한 행운을 잡은 것 같지 않아? 어쩌면 우리가 미래를, 역사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둘은 과거와 미래에서 안부를 주고받는 특별한 사이가 된다. 



왜 우리는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문자로, 메일로, 편지로는 쓸 수 있을까? 

- 너한테만 이야기하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인 것도 모자라 쪽팔리게 멍청한 말까지 해버렸어. 

어째서 가까이 있는 이에게는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멀리 있는 이에게는 다 풀어낼 수 있을까?

- 난 15년 동안 혼자 방치된 채로 살았어. 세상 어떤 아빠가 자식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눈으로 봐? 아빠도 싫고 아빠가 재혼하려는 여자도 싫어서 가출하고 싶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느리고 번거로운 편지로 소통하고 교감할까? 

- 언니랑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나를 돌아보게 돼. 시간이 지나면서 언니는 점점 더 지금의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는데, 어째서 편지에 쓰인 글씨는 점점 더 희미해지는 걸까. 언니, 아직 거기 있는 거지?



이제는 거의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린 '시간 여행' 아래 이루어지는 소설이지만, 여기서 '세계'는 한 발 더 나아가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설정한다. 미래에 사는 은유가 딱 한 살을 더 먹을 동안 과거의 은유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20년을 겪는다. 그래서 둘은 처음엔 언니 동생 사이였다가 이내 친구가 되고 곧 다시 거꾸로 동생과 언니가 된다. 처음엔 미래의 은유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만(학력고사 문제를 찾는 걸로도 모자라 로또 당첨 번호까지 알려주겠다는 야심찬 청소년이여!), 이내 과거에 사는 은유가 어른으로 자라 탐정 노릇을 하게 되었다. 중학생 은유는 돌아가신 엄마의 얼굴도, 이름도, 아무 것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무지와 불신과 의심에 시달리는 은유 동생을 위해, 과거에 사는 은유 언니가 그나마 신상명세라도 파악된 아빠를 찾아나선다. 과거에서 모은 씨줄과 현재에서 얻은 날줄이 교차되어 은유들은 서서히 진실에 다가서고, 왜 하필 두 사람의 편지가 시공간을 거스르고 앞질러가며 서로에게 도착했는지도 깨닫게 된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의 편지는 마치 내 앞으로 오는 것만 같아서, 40쪽 즈음 읽었을 때 이미 나는 은유들과 친구가 되어있었다. 이야기는 소꿉놀이 같은 교환일기로 시작되었다가 중반부에는 청소년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의 이중주로 변화하고, 이내 긴박한 추리소설을 거쳐 애정어린 성장담으로 마무리된다. 낯선 타인들의 시간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비밀과 오해가 벗겨지면서 파편화된 '세계'가 비로소 통합되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거'냐고 괴로워하던 은유는 '계속되고 또 계속되는 인연'을 느끼며 가족을 되찾는다.



예상 가능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나는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시종일관 긴장을 내려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소설가 이꽃님을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죽이고 싶은 아이>의 기막힌 엎어치기로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파격적이고 강렬한 미스터리는 없었지만, 대신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곳곳에 사소한 사랑스러움이 넘쳐나서 좋았다. 서간체 문학 특유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 우리를 금방 은유들의 세상으로 빠지게 만들고, 30년 차이가 나는 시대상은 편지 곳곳에 낯익은 현실성을 부여한다. 특히 캐러멜 마키아토가 뭔지 궁금해하다가도 그게 간첩 암호라면 알려주지 말라고, 혹시 연탄가스를 너무 많이 마셔서 미친 거라면 물김치 국물 좀 마셔 보라고 하는 1984년 은유의 단호함이 그야말로 압권이다. 편지 형식답게 입말의 말 맛이 고스란히 살아있어(이꽃님 작가의 주특기 중 하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내어 웃게 되는 건 덤이다. <키다리 아저씨>,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채링크로스 84번지> 등 편지글 형식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소설도 네 마음에 들 거야' 하는 메모와 함께 건네주고 싶어진다. 



우울하고 울고 싶어질 때 우리는 의외로 가족과 친구에게 괴로움을 흘릴 수 없다.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거리감 없이 매일 보며 일상을 함께 하는 사이라면 뭐든 다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관계는 생각보다도 끈기와 지구력이 약하다. 은유는 아빠에 대한 고민을 친구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말하지 못하고(아빠도 마찬가지다.) 또다른 은유 역시 언니에게서 비롯된 열등감을 주변과 나누지 못한다. 두 은유는 멀리 있어서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마주대할 기회가 없었지만, 그토록 아득하고 그만큼 다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세상은 계속될 거'라는 말을 들은 다음 '걱정하며 살기엔 우리 삶은 너무 짧다'는 말을 해주기. 모든 게 뒤엉켜버린 순간에도 언니만은 그대로인 거냐고, 그렇다면 나도 늘 언니의 동생일 거라는 절박함에 '여전히 내 동생인 은유'라고 돌려주기. 쏟아내면 꼭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은유는 휘청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만날 수 없는 친구, 세상에 없는 엄마, 다가오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는 아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아빠의 여자친구. 은유를 둘러싼 비밀들, 나를 할퀴고 상처입히는 것 것만 같은 세상, 영원히 갈등하고 대립하여 화해란 불가능해 보였던 '세계'... 하지만 그 세계는 결코 일방적인 우위에 놓여있지 않았다. 언젠가 해리 포터에게 그의 스승인 덤블도어가 말했다. '강력한 사랑은 그 나름의 독특한 흔적을 남긴다는 걸 알고 있니? 흉터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흔적도 아니지만... 그렇게 깊은 사랑은 우리를 영원히 보호해 준단다. 너는 그렇게 아름다운 무언가의 흔적이 남겨진 사람이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모든 서신을 통해 은유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한다. 



쿵쿵대며 다가오는 세계를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은유는 긴장했지만, 세계는 사실 오랫동안 은유에게 가기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은유를 안을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너를 생각하고 네가 나를 생각하는 한 우리는 만날 수 없어도 잊히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옆에 있는 사람과 보내는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 기적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네가 거기 있고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서로가 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과도 같은 일인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검은 표지에 반짝이는 색상으로 제목이 쓰여져 있다. 검은 바탕을 긁어내면 아래에 묻혀있던 총천연색들이 드러나는 스크래치 기법처럼, 이 소설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북극성을 찾아내는 이야기다. 더 많은 것들을 내 세상 안으로 들이고 내가 자라며 많은 날들을 잊어가더라도, 우리는 이제 서로를 모르던 때로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단선되지 않았고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아빠가 은유에게 처음 쓴 편지까지 포함해서, 모든 문장이 사랑의 은유 같다. 언제든 세계를 건너 네게 가겠다는 다짐. 네가 부를 때 나는 언제나, 지금도 여기에 있다는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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