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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
전소영 지음 / 달그림 / 2019년 4월
평점 :
<적·당·한·거·리> .이 책은 정말 예쁩니다. 일단 그림이 너무나 세밀하게 잘 그려져 있습니다. 표지에 나온 산세베리아는 그 나름의 통통하면서도 윤기있는 잎새가 만져질 것만 같아요. 책 내부에는 익숙한 (제가 몇 번 하늘로 보낸) 식물들도 나옵니다. 율마, 로즈마리, 페퍼민트 등등. 한 때 키우면서 잎을 문질러서 향을 만끽하던 허브들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습니다. 정말 만지면 향이 피어날 것만 같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네요.
그럼 <적·당·한·거·리>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책에서는 식물을 잘 자라게 하는 거리를 알려줍니다. 모든 식물이 각자 나름의 특징이 있고, 그렇기에 각각 다른 손길이 필요합니다. 볕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볕이 쨍하게 드는 곳에, 음지에서 싱싱한 아이들은 그늘진 곳으로. 물을 자주 줘야 하는 것과 뜸하게 주어야 할 것. 자주 만져줘야 향을 내뿜는 식물들도 있고요. 식물을 잘 기른다는 것은, 결국 그 식물의 특징을 알고 돌봐줄 때와 바라볼 때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적·당·한·거·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고요.
이 책을 읽다 보니, 식물이 그려진 자리에 자꾸 아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저는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너무 무심한 것은 아닌지, 부모라는 이름을 권력처럼 휘두르며 아이를 옥죄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정작 아이가 어떤 특징을 갖는지는 잘 알고 있지도 못한 것 같고요. 식물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도감이라도 찾아보고 인터넷이라도 뒤져볼텐데, 제 아이에 대한 것은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그 나이 때 아이들에 대해서 열심히 배우고, 내 아이는 이런 아이구나 스스로 판단해야 하지요.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그 부분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혹하기도 하고요.
식물이든, 자식이든. 제가 키워야 하는 존재에는 막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아이들은 정말 식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오로지 저를 믿고 예쁜 입을 벌리면서 맛있게 먹어 주거든요. 자라고 하면 잠들고,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고, 옷입고, 양치하고, 씻고. 무엇이든 저를 의존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거리를 유지해야 할까요. 그 거리를 어떻게 측정하면 좋을까요?
심리학적으로는 친밀한 거리는 약 50 cm (연인이나 부모자식 사이의 거리), 개인적 거리는 0.5~1.2 m (친구사이의 거리), 사회적 거리는 1.2~2 m (회의나 비즈니스에 적당한 거리), 공공거리는 3.5~7.5 m(큰 목소리가 필요한 강의나 거리의 약장수와의 거리)로 잡고 있습니다 (유쾌한 심리학, 박지영). 각각의 관계에 따라 이 거리를 무의식적으로 조정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나와 그 대상만이 아는 거리. 마음의 거리가 아닌가 합니다.
이 겨울, 생생한 잎을 싱그럽게 보여주는 이 <적·당·한·거·리> 책과 함께, 소중한 사람들과의 마음의 거리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