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서 인용된 구절이 눈에 띄어 읽게 된 책이다. 일본 소설을 어려워해서 걱정이었는데 이 책은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인간의 심리에 대한 통찰력이 굉장히 좋은 작가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움이 들었고, 그가 남긴 단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싶어졌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덤불 속‘이었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저마다의 진술이 달라서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난 사건에 대해서는 각자의 입장에서 재구성을 하게 되는게 당연한 수순이지만, 여러개의 입이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법조계쪽에서는 항상 있는 일이겠지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흙 한 덩이‘에서 시어머니의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좋았다. 며느리의 우선순위와 시어머니의 우선순위는 다른데 있었고 이로 인해 불편함이 발생했다. 여과되지 않은 것 같은 솔직한 대사들을 통해 등장인물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라쇼몬‘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반쯤 눈을 감아버린 사람들이 보였다. 행위로는 그들을 도덕의 잣대로 비난하게 되지만, 따지고 보면 오십보 백보인 사람들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의 이성과 도덕은 무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죽‘은 소망이 이루어질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을 때의 묘한 불안감을, ‘지옥변‘은 예술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화공의 모습을 보게 된다.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구멍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갓파‘는 상징이 많은 것 같은데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언젠가 재독을 하면서 찬찬히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일본 단편 중에 가장 좋았다.

인간은 간혹 충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욕망을 위해 일생을 바쳐 버리기도 한다. 그것을 어리석다고 비웃는 자는 필경, 인생에 대한 방관자에 불과할 것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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