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읽은 사람이 많은 책이라 기대됐다. 단편집인데 몰랑몰랑한 느낌이라 한겨울에도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첫 단편인 <빨간 열매>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골을 화분으로 만드는걸 화분장이라고 하는데 보통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에게 사용한다고 한다. 화분이 되어서도 잔소리를 하고 요구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색채감이 인상적이었고, 이런식의 판타지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둥둥>의 은탁은 부평초같은 느낌이 들었다. 형규에 대한 팬심이 지나칠수도 있지만 자기 기반마저 흔들어놓는게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형규를 만나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지만, 머핀이 든 캐리어를 어떻게 처리할 방법을 결정하는걸 보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타심과 덕질을 연결한 소설이 새로웠다.

<브로콜리 펀치>의 주인공은 권투선수인데 스트레스를 받아 손이 브로콜리로 변하고 만다. 이를 해석하는 노인들의 시선이 인상적인데 우리도 그랬다, 그러니 산에가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처방이 인상적이었다. 백도는 원래 그렇다는 말이 진한 감동으로 남았다.

이런 판타지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안겨준 책이다. 이유리 작가의 다른 책들도 기대해본다.

이제 아버지는 죽고 없지만 싱크대 위에 동그마니 올라앉은 유골함을 볼 때마다 나는 꼭 그때와 같은 기분이 되었는데 그건 살아 있는 아버지와는 달리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라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아서 나는 유골함을 베란다에 갖다놓으며 언제 양재동 갈 일이 있으면 화훼단지에 들르지 뭐, 하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이상하게도 나는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 밥음 먹고는 대강 화장까지 한 채 양재동에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고 버스 안에서 잠깐 졸다 깨고 나서야 아, 걸려들었다, 하고 깨달았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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