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초기에 스페인의 한 요양병원에서 의료진과 직원들이 돈을 나눠갖고 환자를 방치한 채 도망갔다. 어찌하여 이런일이 발생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스페인 독감을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과거에 젊고 건강한 군인들도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공포의 정도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심했을 수 있을거라고 추측했다.

치료 방법이 없어서 머리 맡에 물과 빵을 놓아두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상처부위에 들끓는 벌레들과 누워 지내는 환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여기에 사람이 있다고 두드리는 게 전부였던 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았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다미앵 신부같은 사람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전염병은 지금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우리가 에이즈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과거 사람들의 공포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사망률이 높은 전염병의 경우에는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있었을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매독과 결핵 환자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였다. 매독은 신체와 얼굴의 변형을 일으켜 타인에게 혐오감을 일으켰다. 반면 결핵은 모델처럼 마르고 창백하게 만들어주었는데 사람들은 이 모습을 좋아했다. 죽음에 이르는 병 앞에서도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선호하는걸 보면서 한편으로 진저리가 쳐진다. 죽음만이 환자들을 공평하게 대우했다.

코로나 펜데믹의 경험은 전염병의 역사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람들은 두려움 앞에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해왔다. 언젠가는 또 다른 전염병이 우리 곁에 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의 상황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부유함과 아름다움을 연관 지으면 결핵이 세균에 의해 발병한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세균은 뇌가 없다. 선택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마주치기만 하면 먹잇감으로 삼는다. 아름답든 추하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현명하든 임기응변에 능하든.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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