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역사만 알고 싶은 독자에게 징비록은 슬픈 소식이다. 이겼지만 이긴 것 같지 않은 전쟁의 끝은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판타지 속으로 숨고만 싶은 마음이 든다. 이게 나라냐라고 외쳐도 이상하지 않을 시절을 지켜보는 마음이 쓰라렸다.

일본에 파견한 사신 중 하나는 분위기 파악에 실패했고, 좋은 소식만 듣고 싶었던 조정은 전쟁이 일어날거란 이야기에 귀를 닫았으며, 성벽과 무기를 점검해야 하는 관리들은 허위로 문서를 작성했고, 백성들은 성을 쌓는 일을 하기 싫어했다. 왕은 피난길에 오르고, 벼슬아치들은 도망을 갔고, 버려진 듯 한 이 땅의 주권이 없어지지 않은 것이 기적인 것만 같다.

평화의 시절이 오래 지속되어 전쟁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기축옥사(정여립 모반 사건)에 에너지가 많이 낭비되었으며,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했고, 군사전략이랄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나오는 진관제도와 제승방략에 눈길이 갔다. 장군이 올때까지 기다려야하는 제승방략은 신속하게 대응하기에 어려웠다. 진관제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묵살되었고 그 결과 일본군이 빠르게 한양을 탈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의지와 패기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탁월한 전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이순신은 주목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몰락한 명문가의 자제로 정읍 현감까지 올라갔으나, 류성룡의 천거가 아니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과 류성룡은 친분이 있는 사이었기 때문에 뒷말도 많았지만 여진족 우을기내를 제거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많은 전공을 세운 그도 마지막에 다시 수군통제사로 부임하면서 통곡을 했다는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곁을 떠났고,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는데 너무 많은 무게를 짊어져야만 했던 그의 자리가 참으로 애석하다.

의병들의 역할이 눈에 띄었다. 관리자들이 모두 도망가고, 담당자들이 싸우지도 않고 무기를 버리는 상황 속에서 대부분 농민이었던 이들의 역할이 빛났다. 의병장이었던 곽재우, 김덕령, 사명대사(유정)이 이 책에 언급되어 있는데, 조헌, 고경명, 정문부, 서산대사(휴정) 및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역모에 연루시켜서 제거해버린 시대에 원망하는 마음이 든다.

읽으면서 많은 물음표가 떠다녔다. 국민들의 민원을 어떻게 수용하는 것이 옳은가? 능력이 있지만 지인을 통해 천거되는 것을 부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전쟁이 끝난뒤 조력하지 않은 자들을 어떤 처벌을 해야 좋을까? 의병의 자녀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제2의 원균을 예방하려면 어떤 정책이 효과적일까? 진린을 감복시킨 이순신의 처사는 옳았는가? 군비는 얼마나 확보하는게 좋을까?

임진왜란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다. 먹고살기도 막막한 백성들의 삶은 얼마나 처절했을까. 이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이순신은 한산도에 있을 때 운주당을 건립하여 아침저녁으로 그곳에 머무르며 여러 장수들과 전쟁 및 군무에 관해 토론하였다. 비록 하급 군사라 하더라도 군무에 관하여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하여 군영 내의 정황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전투에 임할 때는 부하 장수들을 모두 불러 계략이나 전술을 묻고 전략을 정한 이후에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패하는 일이 없었다. - P2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