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합이라고 표기된건 저자가 일본에 살면서 집필했기 때문이고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다. 우리는 ‘경술국치‘라고 표기를 하는 것이 맞다고 국가보훈처는 말한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전후에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김해사람이었는데 고향에서는 부두에서 지게꾼으로 일했다. 이후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와 탄광에서 일했다. 부부는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았다. 엄마는 셋째를 낳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일찍 떠났고 아이도 뒤따라갔다. 아버지 혼자 양육을 하다가 새엄마를 들이지만 아들들은 엄마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배다른 동생이 태어났지만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고 새엄마는 집을 나간다. 다시 아버지 혼자 아들 둘을 키우게 된다.

재일조선인으로 한 집에 지내지만 방향이 달랐다. 아버지는 조선사람으로 태어나 조선을 그리워했지만, 아들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육체적으로 힘에 부치는 강한 노동을 하며 타국에서 자녀를 키워야했던 아버지는 아들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외로웠다. 자녀들 역시 아버지의 완고함과 언어의 장벽때문에 외로웠다. 아이들을 데리고 김해를 갔지만 일자리 등의 문제로 정착하려는 마음을 접고 다시 일본으로 향한다.

학교에서 사고뭉치로 지내다 사카이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주인공을 행동으로 판단하지 않고 연약함을 먼저 보았다. 그를 훈계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선생님의 상냥함을 발견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사범학교에 가있는 도중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작가가 말한 상냥함은 상대를 조건으로 평가하지 않고, 인간대 인간으로 대우하는 진심어린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바로 잡아주는 그 한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일제강점기에 말과 언어를 빼앗긴 나라의 후손으로 일본에 산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온기는 사그라들어가는 마음의 불씨를 살려주었다.

엄마가 먼저 떠난 것은 이 집의 첫 번째 비극이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가난함과 처지를 인식하게 된 게 두 번째 비극이었다. 하지만 상냥한 선생님을 만나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됐다. 나아질 수 없을 것 같은 생활에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준 그 한사람이 있었다. 가족이 아닌 최초의 신뢰할만한 어른이었고 일본인을 만나 다행이다.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내게 된 장면에 뭉클해졌다. 상냥함이라는 단어의 여운이 오래 갈 것 같다.

선생님은 조선인인 나를 격려해 줬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조선인인 나를 한 명의 학생으로 염려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보여 준 이런 마음을 통해 제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고 할지라도, 비록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라할지라도 사람과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선생님의 진심어린 행동으로 나는 인간의 상냥함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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