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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나루세, 구온, 유키코, 교노 네 명의 은행강도 이야기.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특징과 역할이 분명하게 나눠져 있어 캐릭터 하나 하나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더 애착을 갖게 되었다. 적어도 다른 소설을 읽을 때처럼 등장인물이 서로 헷갈리는 경우가 없어서 좋았다. 조직의 리더격인 나루세는 어떤 거짓말이든 얼굴만 보면 가려낼 수 있는 걸어다니는 거짓말 탐지기로, 그 능력으로 진위여부를 가려내고 타고난 침착함과 추리력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날카롭게 전모를 파악하고 해결 계획을 세워 우리의 갱단을 승리로 이끈다. 그 계획이라는 게 동료마저 속이고 미끼로 삼는 등 워낙 거침이 없어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무뚝뚝하고 냉정한 나루세도 알고보면 동료를 아끼고 부조리한 것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정의감을 지닌 주인공다운 면모를 보여 역시 주인공은 주인공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언제나 태평하고 끼어들기 좋아하는 강아지같은 청년 구온은 소매치의 달인이자 열렬한 동물 애호가다. 나는 이 청년이 실재로 존재한다면 친구삼고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나랑 비슷한 나이에 태평한 성격이 호감을 주기도 했지만 나만큼이나 동물을 좋아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는데, 이 청년이 동물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하면 은행털이로 돈을 번 후면 꼬박꼬박 뉴질랜드로 떠나 양떼들과 놀다 온다고.. 구온의 대사중엔 인간을 동물과 비교해 깎아내리는 말이 많은데 비약이 심하다 싶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인정할만한 얘기들이었고 내가 전부터 생각해온 것도 있었다. 사람은 동물보다 무조건 우월한 것이 아니니까. 동물을 좋아하는 구온은 납치법에게 잡혀있는 아가씨에게 이런 말도 한다 "당신은 개 파입니까, 고양이 파입니까?"딱히 의미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왠지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나도 한번 해보고싶은 질문이다. ^^
이 책들 뿐만 아니라 이사카 코타로의 책에는 '복선'이라는 게 무지 많이 나오는데 이번엔 특히 복선이 많았다. 결말로 연결이 되지 않는 등장인물이나 물건이 거의 하나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아무리 사소한 것도 한 번 나오고 끝나는 법 없이 사건 해결에 단서를 제공하고 도구가 되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아하, 이게 여기에 쓰이는구나'를 연발했고, 나중에는 이런 복선을 예상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도 있던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정확히는 소설을 먼저 보고 본 영화-가 원작소설보다 좋았던 기억은 없지만 한번쯤 보고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원작을 워낙 재밌게 보고 나니 좀 실망하게 되더라도 평균 이상을 갈 거라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