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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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끝없이 이어져있는 계곡. 그 계곡물의 흐름을 따라 내가 걷고 있다. 한가한 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목적지 같은 것 없이 그냥, 물을 보고 산을 보고 하늘을 보며 마냥 걷는 길. 그리고 내 앞에는 환갑 넘은 노인이 나보다 더 여유작작하게 걸어가고 있다. 말 없이 함께 걷기를 한 시간. 문득 어르신이 뒤돌아 한마디 하신다.

“처음으로 별을 오각뿔로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 뒤로도 간격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이어진다. 그 중엔 소소한 삶의 이야기도 있고 세상에 대한 탄식도 있으며 한참 어린 나에게 이르는 충고가 있는가 하면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말도 있다. 그 말을 듣는 나는 미소를 짓다가 박장대소하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하는 한편 크게 끄덕이기도 하며 옛 사랑을 떠올리고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노인의 말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는 사이, 어느새 노인의 집에 도착했다.

“차나 한잔 하고 가게.”

나는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노인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혼자 가는 길이지만 발걸음은 오히려 더 가볍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얼추 이런 느낌이었다면 적절한 설명이 되었을까? 이외수 선생님과 나는 산길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살아온 삶을 나누었으며 앞으로의 꿈을 나누었다.

오늘 나눈 대화는 이런 저런 생각들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던 내 머릿속을 맑게 해주었고, 꿈을 향해 나아갈 길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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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리디 쌀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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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이 정도는 하루면 읽겠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 솔직히 다시 덮을 뻔했다. 과장 조금 많이 보태서 내 손바닥 만한 페이지에 무슨 글자가 이리도 빼곡히 적혀 있는지. 킹사이즈 햄버거 회장 토볼드의 복음서를 만드는 전기작가의 이야기라더니 진심으로 성경을 만들 계획이었던 것인지, 문단도 긴 데다가 인물들의 말까지 줄줄이 문단에 포함되어 있어서 읽기가 참 힘들었다.-심지어는 문단 하나가 한 페이지를 넘어 두 페이지 가까이 차지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70p. 쪽수까지 기억나네. 찾아 보면 더 있다.-

 게다가 천박한 회장 토볼드의 가볍고 투박한 말투와 고상한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의 말과 생각이 뒤섞여 누가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말이 끊어지고 장면이 바뀌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서술방식은 나로 하여금 수도 없이 책 읽기를 포기하고 싶도록 만들었다. 솔직히 뭐 이런 책이 다 있는가 싶었다. 그렇다고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을 포기한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영어 지문을 해독하는 심정으로 이해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보고 또 보며 천천히 읽어나갔다.

 다행히도 어느 정도 독특한 서술방식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제서야 이 책의 진정한 재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결말에 다가가서는 책에 완전히 몰입되어 앞부분을 읽는 데 들인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잠깐 사이에 마지막까지 읽어냈다.

 사실 막판에 가서야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간 것은 망가져가는 토볼드의 꼴이 고소해서일지도 모른다. 토볼드는 경영자로서는 세계 최고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는 최악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오만하고 천박하며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전혀 없고 경쟁자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남자 토볼드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철저한 외톨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토볼드를 마냥 고소해할 수만은 없는 것이, 그는 분명 최악의 인간이지만, 그가 하는 말은 –더럽더라도-진실이라는 점이다. 물론 소설에서의 과장이 많긴 하지만 세상의 가장 지저분한 현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신의 복음서에 적으라며 떠벌리는 토볼드의 말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살아볼 만한 썩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세상이라고 믿지만 필시 토볼드와 같은 끔직한 인물도 함께 살고 있을 터, 그들도 이 책을 꼭 한번쯤 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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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손 도장 - 2010 대표에세이
최민자 외 49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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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50인 각자의 개성과 인생이 묻어나는 수필 50편. 50편의 글을 하나 하나 읽으며 한명 한명의 글쓴이와 인생을 나누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인생을 나누어 받았다. 그들 인생의 모든 것은 나누어 받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 일부만이라도 나우어 받으면서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겪었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어렴풋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글을 쓴 분들의 글을 읽으며 아니, 그들의 삶을 읽으며 나는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 것인가, 나는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 세상을 안다고는 할 수 없는 어린 인생이라 타인의 삶은 물론 나의 삶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훗날 머리가 좀 크고 나면 문득 오늘 읽은 이야기가 떠오르며 '아, 이런 말이었구나' 하며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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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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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루세, 구온, 유키코, 교노 네 명의 은행강도 이야기.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특징과 역할이 분명하게 나눠져 있어 캐릭터 하나 하나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더 애착을 갖게 되었다. 적어도 다른 소설을 읽을 때처럼 등장인물이 서로 헷갈리는 경우가 없어서 좋았다. 조직의 리더격인 나루세는 어떤 거짓말이든 얼굴만 보면 가려낼 수 있는 걸어다니는 거짓말 탐지기로, 그 능력으로 진위여부를 가려내고 타고난 침착함과 추리력으로 어떤 상황에서든 날카롭게 전모를 파악하고 해결 계획을 세워 우리의 갱단을 승리로 이끈다. 그 계획이라는 게 동료마저 속이고 미끼로 삼는 등 워낙 거침이 없어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무뚝뚝하고 냉정한 나루세도 알고보면 동료를 아끼고 부조리한 것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정의감을 지닌 주인공다운 면모를 보여 역시 주인공은 주인공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언제나 태평하고 끼어들기 좋아하는 강아지같은 청년 구온은 소매치의 달인이자 열렬한 동물 애호가다. 나는 이 청년이 실재로 존재한다면 친구삼고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나랑 비슷한 나이에 태평한 성격이 호감을 주기도 했지만 나만큼이나 동물을 좋아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는데, 이 청년이 동물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하면 은행털이로 돈을 번 후면 꼬박꼬박 뉴질랜드로 떠나 양떼들과 놀다 온다고.. 구온의 대사중엔 인간을 동물과 비교해 깎아내리는 말이 많은데 비약이 심하다 싶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인정할만한 얘기들이었고 내가 전부터 생각해온 것도 있었다. 사람은 동물보다 무조건 우월한 것이 아니니까. 동물을 좋아하는 구온은 납치법에게 잡혀있는 아가씨에게 이런 말도 한다 "당신은 개 파입니까, 고양이 파입니까?"딱히 의미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왠지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나도 한번 해보고싶은 질문이다. ^^
 
 이 책들 뿐만 아니라 이사카 코타로의 책에는 '복선'이라는 게 무지 많이 나오는데 이번엔 특히 복선이 많았다. 결말로 연결이 되지 않는 등장인물이나 물건이 거의 하나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아무리 사소한 것도 한 번 나오고 끝나는 법 없이 사건 해결에 단서를 제공하고 도구가 되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아하, 이게 여기에 쓰이는구나'를 연발했고, 나중에는 이런 복선을 예상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도 있던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정확히는 소설을 먼저 보고 본 영화-가 원작소설보다 좋았던 기억은 없지만 한번쯤 보고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원작을 워낙 재밌게 보고 나니 좀 실망하게 되더라도 평균 이상을 갈 거라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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