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피했다, 그리나, 피할 수 없는 영화
별-4개
문화나 크레이티브에 대해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 중에,
<한국영화>는 죽어도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꽤 적지 않다.
그 영화가 천 만을 넘긴 <괴물>이든, <도둑들>이든,
문화적 자만감으로
대한민국 영화 시스템이나 크레이티브에 대해 무시하며,
우둔한 대한민국 인구 6분의 1에 껴서
자신의 고고한 문화 경력에 스크래치를 내기 싫다는 것이다.
천만이 넘는 한국 영화도 이런 취급을 받을진대,
상영관조차 잡기 힘든 독립영화나, <김 기덕>의 영화는 오죽하겠는가?
사실, <김 기덕>감독의 영화는 그리 편한 영화는 아니다.
뛰어난 미장센도 없고, 영화적 복선이나,
카메라의 테크닉도 화려하지 않은,
그렇다고 그의 주 무기인 스토리 텔링조차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해마다 나오는 그의 영화는,
영화 보는 내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팝콘 한 줌 입에 넣기가 두려울 정도로 긴장의 연속을 요구하다,
상영관의 불이 켜지면 감동이라기 보다는,
영화가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 마련이다.
그의 모든 작품이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한국인의 뚝심 같은 주제가 있었다.
배우 <조재현>을 앞세운
<악어(1996)>, <야생동물보호구역(1997>에서는
뭔지 모를 사람의 잔인한 야만성과 폭력성을 고발(?) 하더니,
<파란대문(1998)>에서 구원과 용서라는
자신의 잠재적 의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점점 그의 시츄에이션도 발전해 나가면서
<섬(2000)>,<봄, 여름, 가을, 겨울(2003)>처럼,
아예 극명하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동떨어진 아지트 같은 설정이
그의 외로운 크레이티브 컨셉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한 채, 일방통행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늘 남자의 야만성과 잔혹성을,
그 것을 당하는 여자가 용서하고 구원하는 희생으로
한결 같은 영화의 주제로 삼으며
<나쁜 남자(2002)>,<사마리아(2004)><빈집(2004)>에서
아예 민망할 정도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즉, <나 건들지 마, 하지만 외롭게 두진 마>라는
칼날의 이중면 같은 감독의 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주제에 늘 높은 점수를 주는 유럽 영화계는
이런 <김 기덕>감독의 영화에 주목하고 찬사를 보냈으며,
국내에서는 사실 일부 영화 마니아를 제외하고는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고,
심지어 <김 기덕>영화를 피하는 영화 매니아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내 없는 돈을 내고, 없는 시간을 쪼개 쓰며 보는데,
구태여 감독의 독선적인 <일방통행>을
힘들게 견딜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김 기덕> 감독의 한국 영화 관객과 시스템에 대한
섭섭한 눈물로 대변되었고,
급기야, <김 기덕>감독과 한국 영화 관객은
교차로를 지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철로처럼
평행을 이뤄 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오랜 고민 끝에 내놓은 <피에타>는,
의외로 <김 기덕>감독의 대중과의 화해의 손길이었다.
그의 주제 의식을 진부하게 만들었던
억압 받고 핍박 받던 피해자의 여성이
<연인>에서 <어머니>라는,
거역할 수 없는 천륜의 설정이
대중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설정이었다.
같은 사랑이라 해도, 헤어지면 그만인 남에서,
절대 헤어질 수 없는 피붙이로 엮이는 운명의 단단함은
그의 주제인 구원을 보다 더 쉽고 분명하게
대중들에게 전달 할 수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돈으로 환산하는 냉혈한 <강도(이 정진)>이
익숙해진 엄마 <미선(조 민수)>에게
<이제 혼자가 되면 못 살 것 같아>라는 말은
마치 감독의 처절한 외침같이 들리기도 한다.
또, 스토리 위주와 액션 영화와 비슷한 거친 액션 신에서도,
차분하고 계산된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기도 한다.
<강도>가 초반 돈을 받으러 가서,
필사적으로 문을 닫으려는 채무자에게
아무 말 없이 문틈에 손을 넣어 막는 장면은,
역시 <미선>이 <강도>에게 찾아가 문을 닫으려는 그에게
손을 넣어 문을 결국 열게 만드는 설정이 오버랩 되면서,
복수든, 마음을 얻든, 세상의 모든 일은 아픈 대가가 필요하며,
선택이란 하나를 얻는 것이 아닌, 하나를 잃는 것이라는 것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또, <돈이 뭐냐?>는 <강도>의 질문에
<모든 것의 시작과 끝, 슬픔, 분노…>라는 <미선>의 대답은
그가 끊임없이 가져온 <자본주의>의 폐해가
<인격 말살>이라는 의식을 대변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미선>의 자살 장면에서
<강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식의 어머니가 복수 직전,
<미선>의 완벽한 자살이 복수의 끝의 새로운 방법,
용서를 살짝 비틀면서, 영화의 거북한 무게를 줄여주는 듯도 하다.
<모든 사람이 다 불쌍하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강도도 불쌍하다>라는
그 녀의 마지막 대사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영화 <피에타>의 백미는
<미선> 역을 맡은 <조 민수>다.
한국 연예계의 여배우의 유통기한을 훨씬 넘긴 그녀는
사실 대단한 연기력과 마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소평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유는 <김 기덕> 감독처럼,
거부할 수 없는 퇴폐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이 너무 강해,
다른 감독이나 대중들에게 왠지 불편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피에타>의 미선은 배우 <조 민수>에게는
그녀의 알 수 없는 마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계단에 앉아 있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고,
닭의 목을 들고만 다녀도 분노가 탱천해 있으며,
울지 않아도 눈물이 나는 그 녀의 연기는,
한참이 지난 후에도 목젖에서 울렁거린다.
하지만, 배우들간의 앙상블은 무너진 듯하다.
너무나 탁월한 <조 민수>의 연기에,
다른 배우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분량 배분에서도 적지 않은 <이 정진>이나,
다른 조역들의 중요한 대사마저도,
<조 민수>의 흡입력에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것이,
배우들 간의 밸런스가 맞지 않은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너무나 고통스런 방법으로
자신이 피해를 줬던 사람의 트럭 밑에서
죽어가는 <강도>의 자살에서도,
왠지 트럭 운전사가
<조 민수>일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니까…..
이제, <김 기덕> 감독은 시작이다.
<피에타> 이후, 이토록 <김 기덕>의 다음 영화가 기대된 적이 없다.
아무래도 감독으로서가 아닌, 제작자로서
<영화는 영화다> <풍산개>를 만들면서,
영화의 변할 수 없는 본질인 <대중과의 소통>에 대해서도
깨달은 모양이다.
이 전 그의 영화가 정말 피하고 싶은
<17살 영화 천재>의 <일방통행>이었다면,
이젠 영화의 본질에 충실한
<50살 경륜이 묻어있는 천재 감독>의 <쌍방 통행>으로
피할 수 없는 영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역시
<피에타>가 대중을 가르치지 않고,
스스로 붙들어 앉혀놓은 <소통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소통이 없었다면, 베니스도 <감독상> <여우주연상>은 몰라도,
<황금사자상>까지는 그의 손에 쥐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김 기덕> 감독의 연륜에서 묻어난 대중과의 소통이
자만심으로 인해, <일방 통행>으로 돌아가지 않길 소원하며,
그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와 소통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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