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p. ..따라서 일본이 아메리칸 스타일을 받아들여 도용하고 수출하는 이야기는 문화가 어떻게 세계화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쟁이 끝난 뒤 지리적·언어적 고립 때문에 일본은 서구의 자유로운 정보 유입이 제한됐고, 이 점 덕에 미국의 풍습이 언제 어떻게 일본으로 들어왔는지, 이렇게 들어온 뒤 사회 구조의 일부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는지 이례적으로 쉽게 추적할 수 있게 됐다. 세계화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과정이고, 문화적 가닥은 시간이 흐르며 더 복잡하게 얽힌다. 일본의 패션은 첫 번째 가닥이 고리를 만들어 매듭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완벽한 사례다.
52p. ..아이비 학생들은 옷을 입을 때 또 다른 세련된 면이 있었는데, 신발의 구멍, 닳아빠진 셔츠 칼라, 재킷 팔꿈치의 패치 등 옷이 산산조각날 때까지 입는다는 점이었다. 일본의 많은 신흥 부유층은 이런 근검절약에 숨이 막히겠지만, 오랜 부자집 출신인 이시즈는 여기서 아이비 패션과 ‘헤이 하보(hei‘i habo)‘의 한량 같은 거친 룩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냈다. 헤이 하보는 20세기 초반, 일본의 엘리트 학생들이 허름한 유니폼을 입으며 명망을 과시하던 현상이다. 아이비의 옷은 미묘한 조심스러움으로 자신의 신분을 주변에 알렸고, 이시즈의 몸에 흐르는 오랜 부자집 가문의 피는 그걸 느꼈다.
59p. ...야마기와는 훔친 차에 여자친구를 태워 3일 동안 도주한다. 경찰은 손쉽게 이 젊은 연인을 체포하는데, 이 가벼운 범죄는 야마기와가 체포당하면서 일본식 영어로 "오, 미스테이크!"라고 외치면서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조사를 받는 동안 야마기와는 일본어에 무작위로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대답했고, 뜬금없이 ‘조지(George)‘라고 쓴 타투가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모든 언론이 사건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오, 미스테이크‘는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펀치라인이 됐다. 이 유사 영어 캐치프레이즈는 전후의 젊은이들의 극성 맞은, 이제 명백히 드러난 무분별한 미국 문화 수용을 완벽하게 상징했다.
83p. ..이시즈는 아이비 패션이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고귀한 삶의 방식에 대한 길이라는 확신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아이비 패션이 지난 수많은 유행처럼 흥하다 사라지는 일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던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제가 만든 건 트렌드가 아닙니다. 저는 새로운 관습을 만들고 싶습니다."
134p.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일본의 전통문화에 대한 존경심은 땅에 떨어지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가치를 열망했다. 당시 VAN 재킷은 이상적인 미국식 삶을 제공했다. 이시즈는 재능 있는 디자이너이자 경영자였지만, 부는 문화의 차익 거래로 만들어냈다. 구로스는 "VAN 재킷의 모든 일은 일본에는 없지만 미국에는 있는 걸 만드는 거였죠. 우리는 그저 카피를 했지만, 아무도 우리가 뭘 하는지 정확하게 깨닫지는 못했죠."라고 말했다.
191p. ...당시 일본 남성지에는 ‘세 가지 S‘가 필요하다는 말이 돌았다. 섹스(sex), 슈트(suit), 사회주의(socialism)였다. 『뽀빠이』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대신 물질적인 과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사람들은 『뽀빠이』의 건전함이 ‘뽀빠이‘라는 이름을 쓰는 데 맺은 라이선스 계약의 일부거나 ‘건강한‘ 생활 방식의 반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그저 편집자들이 이성보다 제품을 더 좋아했을 뿐이었다.
228p. ..이런 파시스트 패전트에도 보소족은 사실 우익의 주장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인류학자 사토 이쿠야는 교토에서 폭주족을 연구했는데, 그들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없고 대체적으로 우익 조직에 부정적임을 발견했다. 폭주족은 대부분 금기로 여겨진 전쟁 시절의 이미지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힘을 즐겼다.
234~235p. ...야마자키는 이시즈 겐스케처럼 일본에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의 예전 스타일 조합을 소개해 돈을 벌었지만 야마자키의 경우 10대들에게 엘비스,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영향력을 제공한 적은 없다. 야마자키의 팬들은 이런 결핍에 대해 그의 패션이 미국화된 일본의 전후 문화에 대한 메타 진술이기 때문이라며 옹호한다. 크림 소다의 팬은 "내 리젠트, 모자, 옷은 모두 다른 사람들과 영화의 모방입니다. 조금 더 크게 보면, 일본은 미국의 모방입니다. 모두 모방에서 시작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이 모방이 나쁜 건지 좋은 건지 생각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즉, 사회 자체가 복제인데 왜 일본 문화 안의 복제에 관해 설교하려 하냐는 이야기다.
253~254p. ..프레피에는 분명 깊은 정신적인 공명이 결여돼 있었지만 일본의 문화가 실시간으로 글로벌 트렌드를 경험하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순간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예전에 빔스의 직원으로 일하고, 유나이티드 애로스의 크리에이티브 부서 선임 고문으로 일하는 구리노 히로후미는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일본과 미국이 같은 시간에 완전히 똑같은 패션 유행을 가지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시간차도 격차도 없어요. 『뽀빠이』는 ‘시티 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 도쿄 모두 ‘시티‘에요. 그렇지 않나요? 그때까지 틀은 ‘지역‘ 또는 ‘나라‘였어요. 이제는 도시가 나라를 초월하게 됐죠. 이게 바로 지금은 글로벌리즘으로 부르는 것의 시작 지점이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279p. ..이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 직관에 어긋나는 듯하지만, 독점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방법이다. 꼼 데 가르송 같은 디자이너 라인은 아방가르드 디자인과 악마 같은 가격으로 대중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 대신 우라 하라주쿠 라벨은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베이식하고 캐주얼한 제품을 판매한다. 굿이너프와 어 배싱 에이프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두 구하게 된다면, 브랜드의 특징을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가장 확실한 해결 방법은 조금만 만드는 것이다. ..후지와라, 다카하시, 니고는 제품을 수요보다 훨씬 적게 만들었다. 이런 제한이 브랜드가 잠재 고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줬고, 동시에 격렬한 마니아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적은 생산량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불렀는데, 10대들이 옷을 단순히 입지 않고 수집하도록 자극했다.
350p. ..일본의 전통 예술에도 ‘복제하고 쇄신해 나아간다‘는 아이디어의 선례가 있다. 꽃꽂이나 무술 분야에서 학생은 단일하고 최종적인 형태, 즉 ‘가타(型)‘라는 기초를 배운다. 학생은 처음에는 반드시 이 ‘형태‘를 보호해야만 하지만 많은 시간 동안 배우고 나면 이 전통을 파괴하고, 이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런 체계를 "보호하고, 파괴하고, 구별짓는다."라고 설명한다.
354p. ..비즈빔의 고객들은 고급 소재뿐 아니라 모든 제품에 꿰매진 ‘이야기‘에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 희귀한 소재와 전통적인 민속 방식을 고수하면서 나카무라는 그의 제품 하나하나에 특별한 이야기를 불어넣었다. 나카무라는 어떻게 제품이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알고픈 21세기 ‘제작 컬트‘ 소비자들의 수호성인이 됐다. 나카무라는 이것을 미래로 믿는다. "일본 시장은 더욱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나이가 들고 있죠. 사람들에게는 아주 많은 제품이 필요하지 않아요. 의미 있고 영원한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하죠. 그들은 제품 자체만으로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적게 만들고, 적게 판매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