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p.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플라스틱 상자에 들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큼지막한 도시락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6p. «왼»
.."아니. 기록하지 말고 그냥 관찰만 해. 기록하면 기록이 사실처럼 보이게 되고, 사실이 아닌 것도 기록 때문에 진실인 것처럼 보이게 되거든. 일단 머릿속에 어떤 단어도 떠올리지 말고, 어떤 결론도 짓지 말고 바라보기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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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p.
...안 하는 것은 하는 것보다 훨씬, 훠얼~씬 간단하다. 충동은 유행성 감기 같은 것이어서 지나고 나면 어느새 아무래도 상관없어져 버린다.

111p.
..메리가 나를 싫어하게 된 것도 당연할지 몰라.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메리에게는 유코의 그런 허세가 다 보였는지도 모른다. 시오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들떠 있는 건, 아직 젊고 미래가 있어서였다. 반면 유코가 현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발아래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113p.
...이 도시가 차갑다고 말하는 사람의 기분이 처음으로 공감되었다. 이 거리에서 환영받는 대상은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돈 있는 사람들, 재능 있는 사람들, 아름다운 사람들, 젊은 사람들, 당장 가진 게 없어도 희망을 품은 사람들.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젊음도 희망도 잃어가는 인간에게 이 거리는 돌연 싸늘해진다.

158p.
...가격 협상을 마친 후 캐리어를 손에 넣은 그녀는, 기쁘지만 어딘가 생각이 많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살 생각은 없었지만, 엄청 갖고 싶은 것이 눈앞에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충동구매해버렸을 때의 얼굴이었다. 캐리어가 필요하거나 단순히 싸서 산 게 아니라, 그녀와 가나코의 캐리어가 운명처럼 만난 듯 여겨졌다. 아마도 유미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렇게 무언가와 만날 일은 생길 것이다.

169p.
..매일 함께 있는 거라면 굳이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할 시간을 따로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산다면 상황은 다르다. 아이가 돌아왔을 때, 얼굴을 마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라도 의자 두 개는 꼭 필요하니까.

225p.
..자신이 낯가린다고 혹은 무뚝뚝하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서 카즈시는 약간 거만한 냄새를 맡았다. 그들은 타인들에게 사랑받지 못해도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인간들이다. 카즈시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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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얀마에는 "찻주전자 하나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을이 탄생한다"라는 속담까지 있다.

...하지만 내가 쁠라 라가 들어간 라오스식 쏨땀과 숩 너마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방콕 친구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들의 표정에서 이싼이 겪은 수백 년 핍박과 처절한 가난의 역사가 읽힌다. 이싼 음식의 모양과 맛은 바뀌고 있지만 그 역사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들이 공장 근처 포장마차나 노점에서 먹던 빤싯이 번듯한 식당에서 팔리게 되었을 때, 이 빤싯 전문점을 ‘빤싯테리아’라고 불렀다. 이 이름도 빤싯을 대량으로 팔거나 프랜차이즈화한 중국 상인들에 의해 고안되었다는 설이 있다. 중국과 스페인의 문화가 결합한 빤싯테리아는 음식을 팔고 소비하는 장소로서 현대적 의미에 가까운 최초의 식당이 되었다. 초창기 빤싯테리아는 세계 최초의 차이나타운인 마닐라의 비논도(Binondo, 1594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설립)와 톤도(Tondo) 지역에 몰려 있었다.

..미지의 땅 동남아시아로 이주한 중국인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이들은 안전한 정착을 위해 현지 여성과 결혼했다. 중국인 이주민 남성과 동남아시아 현지인 여성 간 교혼은 동남아시아 해협 지역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들을 ‘페라나칸(Peranakan)’ 혹은 ‘해협 중국인’으로 분류했다. 페라나칸은 말레이어로 아이를 뜻하는 ‘아나크(anak)’에서 유래한 말로 해외에서 이주한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과 그들의 후손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주 남성은 ‘바바(baba)’ 그리고 이들과 결혼한 여성을 ‘뇨냐(nyonya)’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국인이 모인 지역을 ‘뻐찌난(pesinan)’이라고 불렀는데, 이곳에 정착한 중국 이주민은 현지인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 보장뿐만 아니라 현지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다.

..이에 반대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아웅산 수치다. 그는 1981년에 발간된 수필집 『공포로부터의 자유』에 "서양인들이 ‘커리’라고 부르는 미얀마식 커리는 실제 인도식 커리보다 향신료를 적게 쓰고 마늘과 생강을 더 많이 써서 맛이 인도식 커리와 다르다"라고 썼다. 실제로 인도식 마살라나 커리 가루가 들어간 미얀마 요리는 인도 본토 출신이라는 뜻의 ‘껄라’라는 말이 들어가 ‘껄라쳇힌’이라고 따로 부른다. 즉 인도식 커리와 미얀마식 ‘힌’은 서로 다른 종류의 음식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유교 문화권이듯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1965년에 독립한 싱가포르와 브루나이(1984년 영국에서 독립)는 말레이 문화권으로 묶인다. 말레이 문화권은 7세기에 중동에서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온 아랍 상인들에 의해 이슬람교가 전파되면서 발전했다. 13세기부터 동남아시아에서 교역을 통해 번창한 이슬람 왕조들은 말라야에서 인도네시아를 가로질러 보르네오, 술라웨시, 말루쿠(Maluku), 현재 필리핀 남부의 술루 군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이슬람 해상 제국을 건설했다....

..‘껌(cơm)’은 쌀로 지은 밥이라는 뜻이고 ‘떰(tấm)’은 부서진 쌀이라는 뜻이다. 즉 부서진 쌀로 지은 밥이다. 한국에서 흔히 불면 휙 하고 날아갈 것 같다고 표현하는 동남아시아 쌀은 인디카종이다. ‘안남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조선 왕조 말기에 안남이라고 불렸던 베트남 중부 지역의 쌀을 수입하면서 생긴 명칭이라고 한다. 곡식의 알이 길고 찰기가 거의 없는 인디카종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와 같은 열대 지역과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전통 음식으로서 른당이 녹여낸 미낭카바우 사람들의 철학은 요리에 들어가는 네 개의 주재료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이 요리에 들어가는 육류(dagiang, 다기앙)는 그 지역 유지나 지도자를 상징한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혹은 이끄는 공동체를 위해 소 한 마리 내어줄 수 있는 재력과 힘을 가진 전통적 씨족 공동체 지도자들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재료인 코코넛 밀크, 혹은 코코넛은 공동체 발전을 위해 지적 능력을 내어주는 지식인, 교사, 작가 등을 상징한다. 세 번째로 ‘라도’로 불리는 칠리와 고추 같은 재료는 성직자와 전통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sharia)를 상징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향신료를 혼합한 양념인 쁘마삭(pemasak)은 미낭카바우 사회 전체를 대표한다.

..찹쌀과 멥쌀을 구분하는 기준은 전분의 주성분인 아밀로오스(amylose)와 아밀로펙틴(amylopectin)의 함량이다. 찹쌀은 아밀로오스가 아예 없거나 아주 소량 있고, 아밀로펙틴 함량이 거의 100%다. 아밀로오스 함량이 낮을수록 밥을 지으면 광택이 생기고 찰기가 높아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부드러워진다. 멥쌀은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 비율이 2대 8 정도다.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을수록 밥을 지으면 찰기가 거의 없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진다. 한 가지 더 눈여겨볼 만한 점은 아밀로펙틴 함량이 많을수록 소화가 빠르다는 점이다. 그만큼 영양분이 빠르게 체내에 흡수된다는 뜻이다. 대부분 사람은 찹쌀이 백미보다 소화하는 데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다. 오히려 찹쌀이 소화 흡수가 빠르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당뇨 위험성도 크다.

...동남아시아에서 주식으로 삼는 쌀은 대부분 멥쌀인 인디카종인데 이는 한국인들이 주로 소비하는 자포니카종보다 모양이 길고 익히면 찰기가 덜해 밥알들이 잘 붙지 않는다. 그런데 인디카종이 자포니카종보다는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다. 그래서 소화가 천천히 이루어지고 그만큼 에너지가 천천히 공급된다. 동남아시아에서 찹쌀 음식이 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소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디카종 쌀이 못하는 ‘빠른 에너지 공급’을 찹쌀이 대신하는 셈이다. 태국의 ‘카오니아오 마무앙’이 바로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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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as located in Kampung Sungai Beruk, the "village of the river of apes". Well, better than a river of piss, at least. There was a lot of jungle around there, but strangely no discernible river, and I’d not seen many monkeys in the trees behind the house either, so I often wondered where the name could have come from. I could have said the same for many other places in Brunei actually; names here tend to have rather random meanings.

...My face felt hot, and the slap still stung. Pa rose and gave me an odd look, as though he suddenly didn’t recognise who I was. He looked at the palm he had used to slap me and, briefly, I almost thought I saw his head turn away from it, like he was flinching from his own hand....

...Blue was a weak ink. Black ink on white paper, now that looked like the perfect representation of truth absolute.

..But while those false smiles usually annoyed me, Mohidin’s only made me feel sorry for him. His upturned lips made a very poor cover for all the loneliness I could see written over the rest of his face.

...I wondered why these people had used their most recent photos to represent themselves on their tombstones; I’d have figured that they’d want themselves remembered as they had looked in their prime, young and full of life.

...My feet placed close to the edge, I crouched and peered at the coffin inside for one last look. Covered in the earth we’d just pelted at it, it lay nestled in there like a book at the bottom of an old trunk, the story over and never to be read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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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을 휘두르고 바닥을 박차며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가속하는 다리는 그때까지 잠들어 있던 진정한 자신이 눈을 뜬 듯 가벼웠다.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화살처럼 사라졌다. 그때 몸속의 모든 세포가 하나도 빠짐없이 불꽃을 내뿜는 것 같은 감각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형은 살해당했고 부모는 나를 남기고 미국에 갔다. 그래도 만년상업대루의 구둣가게에서 농구화를 훔쳤을 때 나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살려고 했다. 우리 앞에 이제 막 시작된 여름방학이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기억이 불러온 감각은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것과 비슷했다. 유리컵에 물을 붓는 것처럼 추락의 풍경은 사라지지 않고 내 몸을 채웠다.

..나는 진심 안타까운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한수밍이 아무 데도 없어서 좋았다. 만약 발견되면 우리는 잔혹한 짓을 하게 되었을 테니까. 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나와 제이의 관계는 뒤틀려 있었다. 화해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아아, 집오리가 된 기분이야." 바닥을 쓸면서 아강이 커다란 목소리로 내뱉었다. "막대기를 든 녀석이 우리를 어딘가로 몰고 가는 것 같아."

...그 떠들썩한 날들 속에서 나는 그저 불행할 것이라는 예감에 겁먹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불행의 예감은 불행 자체보다 호되다. 거대하고 사악한 싹이 트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가 작고 귀여운 생명체일 때도 있다. 사람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반대로 무슨 일에든 불행해질 수 있다....

..그들은 오랜 전우처럼 서로를 놀리며 당연하다는 듯 나까지 끌어들여 웃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느낌이다. 바닥에 떨어져 깨진 술병은 아주 한순간 동안만 병의 형태를 유지했다. 병이 깨졌다는 사실을 안에 든 술이 아직 깨닫지 못한 듯. 그것은 예리한 칼이 몸을 베고 지나갈 때 바로 피가 나지 않는 것과 같다. 잠깐의 틈을 두고 병이 폭발한다. 코를 찌르는 고량주가 튄다. 내가 전혀 보지 못한 광경을 나는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 볼 수 있었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마지막 날이었다.

..아버지가 꿈지럭거리며 몸을 움직이자 바닥에 떨어졌던 어스름한 불빛 속의 그림자도 천천히 움직였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당황했고 조금은 될 대로 되라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래서 더 아버지보다 정직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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