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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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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바라봄에 익숙해져
어느날 또 한번 파르르 떨린대도
속 내 한줌 슬며시 흘리지도 못하고
안으로만 꼭꼭 여며
생각는 것 또한
애틋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그예 마음 모두 팔아버리고
빈 속으로 몇 날을 몽중에 있다가
깨어도 깨어도 한동안은
어느 한 곳 밖에는 못 볼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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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한 가슴패기로 하염없이 밀려왔다 밀려가고 난 후에야
저 밑바닥 웅숭깊은 곳 드레박질이 요란하다
아무리 퍼내어도 바싹 마르지 못하는 너무한 것
오래 되어도 추억은 아니 되고 오늘 언저리 일인 것만 같아
이제는 혼자서 발맘발맘 밀려가고 밀려오며
아무데나 애정 꽃 한 무더기씩 피우고 떨구고 온다
어느 환장할 꽃이 피는지 지는지 한번 봐주러 오지 않으니
누구나 한번쯤은 제 가슴에 들어와 꿈처럼 박히길 원한다는
아득한 별꽃이나 대낮부터 피워 올려 두어야겠네
혼자 점심을 먹으며 불현듯 생각났다
이때로부터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흰머리 할망구가 되어서도 그럴 것 같아 내심 조금은 걱정이 든다
저렇게 적어내려가던 시절엔 즐겼던 듯 보인다, 저런사람...스러움을
병이 아니고서야
다중 동경, 다중 기다림, 다중 환상...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상기하도록, 부디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의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런 부류의 인간도 있는 것일테지...라고 생각해야 하나
<달콤한 나의 도시>의 그녀...
웅숭깊다거나 잠포록하다거나 우수에 차 있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베스트 셀러극장이나 만화컷의 주인공 표정이 생각나지만, 그래도 즐거운 <달콤한 나의 도시>.
그녀의 생활과 그녀의 글쓰기는 달콤하게 표현된 게 맞다.
소설 전체의 감성은 잘 맞물리지 않는 듯도 하지만 역시나 화자의 감성은 내 감성이나 성격과 흡사하다.
은수 역시 내가 자주 하곤 하는 흔하디 흔한 국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한다. 사전적 의미를 읽고 나면 마치 정리가 되기라도 하는 것인 양.
생각해본다. 내 맘이 그랬었구나, 내 행동이 그랬었구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가 만든 이유라는 것들에 대한 어설픈 이해가 진행된다.
소설은 당위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딴 사람처럼 굴며 들쑥날쑥 감성의 느낌이 다르기도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솔직하다. 맴돌던 내 생각이나 걱정, 막연함들이 이렇게 정리되어 어렴풋하게나마 표현이 된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내 성격이나 생각과 꽤나 맞물린다는 의미다.
(자장면집 '동천홍'이 소설 2p에 나온다. 에구 깜짝이야. 내가 좋아하는 중국집이다. 맛도 맛이려니와 친절한 지배인을 만나볼 수 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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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필름인 영화는, 제목과는 짐짓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인공들은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하며 계속 헤매다니기만 했다. 더 당혹스러운 건, 주위 관객들이었다. 수능시험을 이틀 앞둔 도서관처럼 실내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하물며 내 옆의 여자는 무릎 위에 노트를 펼쳐놓고 무언가를 연방 적어대는 중이었다.
... 타인의 취향을 온전히 존중하는 것이 교양인의 자세라고 배웠다. 하품을 하지 않고 시간을 견딜 정도의 교양은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낯선 소외감이 엄습했다.
(은수와 태오가 안토니오니의 <정사>를 보는 -하이퍼텍 '나다'로 짐작되는 극장에서- 이 대목에서 정이현씨는 묘사한 상황 중 어느 쪽에 해당하는 지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이상하고 고리타분하게 보였겠구나 싶다. 그리고 상대방이 이런 곤혹스러움에 빠지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보통 이런 걸 보고 사람들이 내게 평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런거 하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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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준 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스노우 펠리스'의 옳은 표기법은 '스노 팰리스'인 것이다. 그 뒤, 집주소를 적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순간적으로 망설이게 된다. 거창한 오류로 점철된 나의 주소를 읽는 누군가가 나의 진실성과 속물성을 한데 섞어 의심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탓이다.
(이런 문장을 보면 화자와 작가의 성격을 반반씩 섞어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허나 인간이란 극과 극을 달리는 법이다. 게다가 난 항상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