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건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서 그 가치를 잊는다. 예를 들면 사람이 단 1초도 없인 살 수 없는 공기가 그렇고, 부모님의 사랑이 그렇다. 그리고 자유가 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없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게끔 만든다.
이 영화는 자유를 박탈당한 통일 이전의 동독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1984년 정도쯤. 주인공으로 나오는 비즐러는 중앙정보국 소속으로 심문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이다. 그의 친구이자 대령인 그루비츠의 제안으로 연극 작가인 드라이만을 도청하게 된다. 예술가 집단은 타 직업에 비해 자유를 갈망하고, 사회주의 이념에 반하는 사상을 예술적 통로를 통해 전파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단정한 용모,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 행태 등을 통해 비즐러의 깐깐하고, 비틈없는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단순하면서도 치밀하다. 다른 동료와 교대로 지금으로 말하면 CCTV, 전화기와 집 안에 설치된 도청기 등을 통해 드라이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사회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못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를 가두기 위한 문화부 장관의 음모는 덤이다.
하지만 비즐러도 인간이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한 예로 매춘부와 사랑을 나눈 뒤, 가지말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약손님만 받는다는 차가운 그녀의 말에 좌절하긴 했지만 그는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의 고독함과 외로움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인지 그루비츠를 제외하곤 그의 주변인, 예를 들어 친구나 가족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주위엔 그가 감시해야 할 드라이만과 그의 부인 그리스타뿐이다.
하지만 철옹성같던 그도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장면이 드라이만의 동료인 한 예술가가 자살한 후 그가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란 곡을 연주할 때 비즐러만 눈물을 보였다. 헤드폰 넘어 들리는 피아노의 선율에 자신도 모르게 많은 감정을 느낀걸로 생각된다. 그 후부터 주인공은 자신의 명분을 잊은채 감시대상들의 행동이나 말 등을 거짓으로 보고하며 그들을 옹호한다.
결국 동독 내 예술가들의 자살을 주제로 그들이 몰래 쓴 기사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중앙정보국은 발칵 뒤집히고, 드라이만의 부인인 크리스타를 강제 연행하여 기사가 발원지인 '타자기'의 정보를 알아낸다. 물론 심문은 비즐러의 몫이었다. 타자기의 소재지를 파악한 중앙정보국의 그루비츠는 드라이만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그보다 한 발 앞선 비즐러의 노력으로 타자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밀을 누설했단 죄책감에 크리스타는 자살을 시도, 끝내 숨을 거둔다. 그녀의 희생으로 중앙정보국은 드라이만의 감시를 포기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비즐러는 좌천되고 만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89년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고, 예술가들이 바랬던 자유의 시대가 열렸다. 재밌게도 한 극장에서 드라이만과 그의 앙숙이었던 전 동독문화부 장관이 만난다. 장관은 이 사회가 사랑과 믿음이 없다며 개탄하지만, 드라이만은 더이상 감시가 없는 세상이 된 사실에 만족하며 자리를 뜬다. 장관을 통해 자신이 감시받고 있단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드라이만은 수소문끝에 자신을 감시한 사람이 HGW XX/7 이란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란 걸 알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자신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단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장면이 참 감동적이었다. 전단지가 담긴 바구니를 끌며 기를 가던 비즐러는 서점을 지나가는 도중에 우연히 드라이만이 쓴 '선한사람들의 소나타'의 사진을 본다. 자신도 모르게 그 책을 펼친 그는 드라이만이 동독 시절의 나였던 HGW XX/7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는 글을 보고 계산대로 가 이 책을 구입한다. 이 장면에서 나도 감동을 받았다. 잔잔한 감동이지만 큰 여운이 남는 그런 감동을..
이 영화를 보며 조지오웰의 '1984'가 계속 생각났다. 이 책도 빅브라더란 존재에 의해 모든 사람이 감시받는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감시하는 사람의 감정 변화에 더 초점을 맞췄다. 감시대상인 드라이만의 부인인 크리스타에 대한 사랑의 감정도 나타났고, 드라이만의 사회주의 체제에 반하는 행동 등도 모른척해줬다. 이게 그녀의 사랑의 부산물인지 아니면 자신의 자유에 대한 내제된 갈망이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된건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중요한건 그 자신이 점점 변한다는 것이다.
우린 자유없이 살 수 없다. 자유를 위해 전 세계는 싸워왔고, 오늘날 자유주의라는 사상체계를 몇몇 국가를 제외하곤 다같이 공유하고 있다. 아니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앞으로 자유주의가 퇴색되는 일이 일어나서도 일어나지도 않을거라 믿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과연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진정한 용기는 무기를 들고 적과 싸우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모두 놓는것도 무척 용기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전엔 잔인하고 냉혈한이었던 비즐러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참으로 용기있었고,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