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애틋하게
정유희 지음, 권신아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함부로 애틋하게


나는 네가 비싸도 좋으니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싸구려라도 좋으니
가짜가 아니기를 바란다


만약 값비싼 거짓이거나
휘황찬란한 가짜라면
나는 네가 나를 끝까지 속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기꺼이 환하게 속아 넘어가주마
함부로 애틋하게 속아 넘어가주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것은 꽤 중요하다. 취향은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나를 살피고, 발견하고, 이해하고, 알아가는 일이다. 일상의 결을 다듬고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갖는 일, 은밀한 즐거움을 누릴 삶의 동반자를 만드는 일,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입고 있는 옷, 손에 든 가방, 입술 색깔, 아이라인의 방향, 헤어스타일, 신발의 굽, 지갑 크기, 카드 내역서, 펜의 굵기, 휴대폰 커버, 방의 벽지, 커피의 종류, 냉장고 속 식재료, 책장에 꽂힌 책, MP3 노래 목록, 자주 가는 카페, 대화의 주제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취향이 묻어있다. 취향은 한 개인의 생활방식, 심미안, 미적 감수성, 사고체계, 정체성, 세계관이 발현된 축도이다.

/출처 미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 것들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모두 널 울게 할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난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나는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망고 구피를 사랑했고
비오는날 무작정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대던 아빠의 커다란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 버려야 했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 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신지상, 베리베리 다이스키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날 창비시선 4
김광섭 지음 / 창비 / 197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녁에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 창비시선 415
박신규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는 봄이다

네가 와서 꽃은 피고
네가 와서 꽃들이 피는지 몰랐다
너는 꽃이다
네가 당겨버린 순간 핏줄에 박히는 탄피들
개나리 터진다 라일락 뿌려진다
몸속 거리마다 총알꽃들
관통한 뒤늦게 벌어지는 통증
아프기 전부터 이미 너는 피어났다

불현듯 꽃은 지겠다 했다
죽을 만큼 아팠다는 것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찔레 향에 찔린 바람이 첨예하다
봄은 아주 가겠다 했다
죽도록이라는 다짐은 끝끝내
미수에 그치겠다는 자백
거친 가시를 뽑아내듯 돌이키면
네가 아름다워서 더없이 내가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때늦은 동백 울려퍼진 자리
때 이른 오동꽃 깨진다 처형처럼
모가지째 내버려진 그늘
젖어드는 조종(弔鐘) 소리

네가 와서 봄은 오고
네가 와서 봄이 온 줄 모르고
네가 가서 이 봄이 왔다
이 봄에 와서야 꽃들이 지는 것 본다
저리 저리로 물끄러미
너는 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