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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이듬해, <상실의 시대>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자유’, ‘사랑’, ‘도전’, ‘청춘’ 등 낭만적인 낱말들이 주인을 잃어 난무하던 캠퍼스에서, 비슷한 혼란과 방황을 겪고 있는 나에게 하루키의 ‘상실’은 그나마 고독감을 조금은 갈음할 수 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것이었고, 어떤 때는 자아실현의 문제와 같았다. 그리고 때로는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다. 한 개인의 열망이 - 그것이 순수한 목적을 향한 의지나 불순한 마음으로부터 오는 욕망이든 - 마치 아포카토처럼 첫 맛과 달리 마지막에는 쓴 맛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하루키의 작품은 내게 적잖은 영향을 주었고, 그의 이야기에 나는 점차 중독되어갔다.
올 한 해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것은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대한 출간 소식이었다. 하루키의 신작은 평소 하루키에 대한 나의 이해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색채가 없는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 그가 색을 찾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친구들이기도 했고, 친구들의 이름처럼 스스로를 존재케 하는 특성과도 같았다. 하루키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이였다. 친구들로부터의 일방적인 절교가, 마치 온 세계로부터의 부정인 것처럼, 쓰쿠루에게 있어 친구들은 곧 세계이자 생의 전부였다. 부정당한 삶, 그것은 탈색된 자아, 생이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다자키 쓰쿠루의 고민은 쓰쿠루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쓰쿠루를 단절시킨 다른 친구들 역시 동일한 상실을 겪고 있었다. 그룹이 해체된 원인은, 이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있었다. 그것은 핀란드에서 만난 에리의 목소리를 통해서 드러난다.
“우리는 저마다 그런 상념을 짊어진 거야.” -에리
하루키의 소설이 대중에게 여전히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현대인에게 가장 큰 질병 중 하나인 ‘상실감’을 잘 이해하고 만져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문학은 작은 의미에서는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큰 의미에서는 시대를 반영하는 스토리를 지닌 담론이라고 한다. 하루키가 살고 있는, 하루키를 읽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모두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 아닐까.
현대인의 상실은 크고 깊으며, 복잡하게 얽혀있다. 가족과의 관계, 이성과의 관계, 이상과 현실의 관계 등, 사회와 기술은 날마다 진보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점점 헤져서 닳고 있다. 가볍고 쉬운, 오락과 퇴폐적인 문화는 날이 갈수록 성행하고 있다. 어떤 해법들이 우리들의 상실을 해결해줄까? 모든 문제의 극복일까? 어려운 것 같다. 다만 잊거나 익숙해져야 할 뿐...인 걸까. 쓰쿠루에게 사라는 과연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