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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도배사 이야기 -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 ㅣ 에디션L 3
배윤슬 지음 / 궁리 / 2021년 7월
평점 :
이 책은 도배업 기본을 다룬다. 도배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입문을 위해 필요한, 기초 교육이나 준비물, 근무 환경, 초심자가 작업장에서 쉽게 부딪치는 경험과 감정 등을 상세히 나열하고 있다.
@궁리 출판사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책은 ‘문턱-천장-벽과 모서리-창문’ 등의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공간과 시점의 이동이 나에게는 시간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이제 갓 ‘문턱’을 넘은 입문자가 각 방과 구조에 익숙해질 때쯤 ‘창문’ 너머를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예비 도배사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책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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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배윤슬은 20대 도배사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20대’, ‘사회복지’라는 키워드가 ‘도배’로 이어지는 게 의아할 수 있다.
그가 처음부터 도배를 생각한 건 아니다. 아주 번듯하지 않더라도 친구들처럼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안 돼 그만두고 나왔다. 이상과 현실이 달랐고, 무엇보다 조직 생활이 힘들었다.
남들이 알아 주는 기업, 사회적 평판이 좋은 직업 등을 얻기 위해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 법도 한데, 저자는 그러지 않았다. 행동을 멈추고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 어떤 생활을 원하는지, 거꾸로 어떤 일을 하기 싫어 하는지, 할 수 있거나 없는 일은 무엇인지. 그렇게 거르고 걸러 남은 선택지 중 하나가 도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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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건, 이러한 경험을 저자는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파트 공사장 현장에서 도배하는 저자의 모습은, 누가 봐도 ‘노가다’다. ‘한창 젊은 사람이 왜?’ 화살처럼 날아드는 주변의 몰이해와 잔소리는 과녁을 비켜 나간다. 저자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으니.
“기계 부품처럼 쉽게 대체되는 사람, 그래서 홀대 받는 입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필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보다 일터에서의 내 존재감이 더 중요했다.” (47쪽)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직업은 귀천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성공은 상대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이지만 좋은 직업이 성공한 삶이라는 공식이 나를 비롯해 20-30대에게는 진리처럼 통용된다는 걸 누가 부인할까. 오랜 시간 입시와 취업 전선에 견고하게 구축된 통념을 저자는 삶으로 부딪히며 허물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솔직하고 대담한 글쓰기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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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언론이 저자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처음 알게 됐다. ‘대단하다’, ‘멋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비아냥대는 이들도 있었다. ‘솔직히 2년 도배한 것 가지고 뭘 안다고 책을 쓰냐.’ 머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만 신경 쓰다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사는 겁쟁이들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성공 방정식의 오류를 깨닫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주체는 저자다. 결과가 어떤 모습이든 책임지는 사람도 저자다. 선택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책임까지 미리 모두 떠안는 행위다. 남이 함부로 평가해서 안 된다.
저자는 말 그대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 책에서 그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어느 한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만큼 사람은 강해진다. 하지만 여기에는 뒤따라올 여러 말들을 감내하고 상처받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강하고 용감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선망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길 반복했다.
“도배의 첫 시작을 건설 현장에서 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일까,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게 한다. 그 누구의 권유도 없이 순전히 내 선택으로 시작한 일이기에 그것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나에게 있다. 혹시 잘못된 선택으로 내 젊은 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래들에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걱정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미 뛰어든 일이고 한 번 뛰어든 이상은 갈 수 있는 한 끝까지 가 보자고 마음먹었으니 이런 생각들은 최대한 빨리 떨쳐내려 노력한다.” (158쪽)
"도배의 첫 시작을 건설 현장에서 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일까,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게 한다. 그 누구의 권유도 없이 순전히 내 선택으로 시작한 일이기에 그것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나에게 있다. 혹시 잘못된 선택으로 내 젊은 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래들에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걱정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미 뛰어든 일이고 한 번 뛰어든 이상은 갈 수 있는 한 끝까지 가 보자고 마음먹었으니 이런 생각들은 최대한 빨리 떨쳐내려 노력한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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