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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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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피드에 유독 많이 올라와서 궁금해서 읽은 책. 순식간에 읽었다. 이 책은 뭐랄까. 장르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 모르겠다. 과학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주제는 인생에 대한 태도를 다룬다.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다.  


책은 미국에서 권위 있는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학 전문 기자인 저자는 조던의 성장, 갈등, 극복, 성공기를 들려 주는데, 책이 후반으로 갈수록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머릿속에 가장 오래 머무른 질문은 '내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였다. 이전에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이런 말을 했었다. "우주는 심심하다"고. 오로지 규칙과 질서로만 움직이는 우주에서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으며,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야말로 인간의 편견이라고 말이다. 


책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저자가 어릴 때, 과학자 아버지가 한 말이다. 그는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라는 딸의 질문에 이렇게 말하는데.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기에는 저자는 어렸다. 그리고 그는 '진실’을 원했던 게 아니었다. 단지 '너의 인생은 소중하단다', '너의 삶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와 같은 아버지의 따뜻한 말을 듣고 싶었을 뿐. 


-


어른이 된 그는 분류학자의 삶을 쫓는 과정에서 우연치 않게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는데.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우주의 냉엄한 진실이다. 우리는 작은 티끌들, 깜빡거리듯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중략) 자기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 때문에 자신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럴 수 없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어쩌면 "모든 사람은 의미가 없다"고 한 아버지가 정말 딸에게 전해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저자가 책 머리에 "아빠, 이 책은 아빠를 위한 책이에요" 라고 썼듯이, 어릴 때 한 호숫가에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한 아버지의 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정리한 게 아닐까 싶다.  


사랑에 실패하고 낯선 도시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여전히 자신의 '의미 없음’을 재확인하던 저자는 7살 연하의 동성 연인을 만나며 깨닫는다. '이 사람이 없는 인생은 절대 원하지 않아.'  


사회로부터 거대한 폭력을 당하고 배제된 미약한 이들이 수많은 생명을 살리고 기적을 일으키는 모습에서 저자는 깨닫는다. 그래, 삶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의미를 발견하고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 두는 힘을 가져.


나는 책을 덮고 다시 김상욱 교수와 패널들의 대화를 떠올렸다. 김 교수의 말을 들은 유시민 작가는 사람이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고 결혼한 게 신기하다고 놀리는데. 김 교수는 말한다. "그때 아내에게 이렇게 고백했어요. 아무 의미 없는 우주에 거대한 의미가 생겼다고." 


이 책은 삶의 질서와 의미에 관한 이야기. 나는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위로를 얻었다고 해야 될까. 그래, 남보다 더 우월할 필요가 없어. 더 똑똑하고 더 날렵하고 더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아. 거기에는 내가 찾던 '의미’를 얻을 수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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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도배사 이야기 - 까마득한 벽 앞에서 버티며 성장한 시간들 에디션L 3
배윤슬 지음 / 궁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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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배업 기본을 다룬다. 도배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입문을 위해 필요한, 기초 교육이나 준비물, 근무 환경, 초심자가 작업장에서 쉽게 부딪치는 경험과 감정 등을 상세히 나열하고 있다. 


@궁리 출판사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책은 ‘문턱-천장-벽과 모서리-창문’ 등의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공간과 시점의 이동이 나에게는 시간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이제 갓 ‘문턱’을 넘은 입문자가 각 방과 구조에 익숙해질 때쯤 ‘창문’ 너머를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예비 도배사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책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


저자 배윤슬은 20대 도배사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20대’, ‘사회복지’라는 키워드가 ‘도배’로 이어지는 게 의아할 수 있다. 


그가 처음부터 도배를 생각한 건 아니다. 아주 번듯하지 않더라도 친구들처럼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안 돼 그만두고 나왔다. 이상과 현실이 달랐고, 무엇보다 조직 생활이 힘들었다. 


남들이 알아 주는 기업, 사회적 평판이 좋은 직업 등을 얻기 위해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 법도 한데, 저자는 그러지 않았다. 행동을 멈추고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 어떤 생활을 원하는지, 거꾸로 어떤 일을 하기 싫어 하는지, 할 수 있거나 없는 일은 무엇인지. 그렇게 거르고 걸러 남은 선택지 중 하나가 도배였다.   


+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건, 이러한 경험을 저자는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파트 공사장 현장에서 도배하는 저자의 모습은, 누가 봐도 ‘노가다’다. ‘한창 젊은 사람이 왜?’ 화살처럼 날아드는 주변의 몰이해와 잔소리는 과녁을 비켜 나간다. 저자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으니.  


“기계 부품처럼 쉽게 대체되는 사람, 그래서 홀대 받는 입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필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보다 일터에서의 내 존재감이 더 중요했다.” (47쪽)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직업은 귀천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성공은 상대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이지만 좋은 직업이 성공한 삶이라는 공식이 나를 비롯해 20-30대에게는 진리처럼 통용된다는 걸 누가 부인할까. 오랜 시간 입시와 취업 전선에 견고하게 구축된 통념을 저자는 삶으로 부딪히며 허물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솔직하고 대담한 글쓰기를 통해서. 


+


나는 한 언론이 저자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처음 알게 됐다. ‘대단하다’, ‘멋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비아냥대는 이들도 있었다. ‘솔직히 2년 도배한 것 가지고 뭘 안다고 책을 쓰냐.’ 머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만 신경 쓰다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사는 겁쟁이들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성공 방정식의 오류를 깨닫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주체는 저자다. 결과가 어떤 모습이든 책임지는 사람도 저자다. 선택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책임까지 미리 모두 떠안는 행위다. 남이 함부로 평가해서 안 된다.      


저자는 말 그대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 책에서 그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어느 한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만큼 사람은 강해진다. 하지만 여기에는 뒤따라올 여러 말들을 감내하고 상처받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강하고 용감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선망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길 반복했다.  



“도배의 첫 시작을 건설 현장에서 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일까,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게 한다. 그 누구의 권유도 없이 순전히 내 선택으로 시작한 일이기에 그것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나에게 있다. 혹시 잘못된 선택으로 내 젊은 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래들에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걱정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미 뛰어든 일이고 한 번 뛰어든 이상은 갈 수 있는 한 끝까지 가 보자고 마음먹었으니 이런 생각들은 최대한 빨리 떨쳐내려 노력한다.” (158쪽)




 


"도배의 첫 시작을 건설 현장에서 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일까,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게 한다. 그 누구의 권유도 없이 순전히 내 선택으로 시작한 일이기에 그것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나에게 있다. 혹시 잘못된 선택으로 내 젊은 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래들에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걱정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이미 뛰어든 일이고 한 번 뛰어든 이상은 갈 수 있는 한 끝까지 가 보자고 마음먹었으니 이런 생각들은 최대한 빨리 떨쳐내려 노력한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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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습관의 힘 -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임스 클리어 지음, 이한이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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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야구선수를 유명 작가로 만든 습관의 힘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자신의 경험을바탕으로 습관의 강력한 힘을 이야기한다.


제임스 클리어는 고등학교 야구선수 시절 큰 부상을 입었다. 재활을 계속해 대학에서도 야구를 계속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다. 제임스는 낙심하지 않았다. 꾸준히 자신을 관리했다. 동기들이 비디오게임을 할 동안 일찍 잠에 들고, 방을 깨끗이 정리했다. 몸도 규칙적으로 단련했다. 이러한 작은 습관은 그에게 서서히 변화를 가져다줬다. 삶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고,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했다. 그는 결국 졸업을 앞두고 전국에서 33명만 지명받는 ESPN 전미대학 대표선수에 올랐다. 


제임스 클리어는 습관과 관련한 경험과 생각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구독자가 점점 늘어나더니, 기업 강연과 컨설팅을 요청하는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는 현재 습관 형성을 코칭하는 전문가가 됐다. 

실패한 야구선수로 전락할 수 있었던 운동선수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때문이라고 제임스 클리어는 말한다. 그는 눈에 띄지 않은 작은 일상의 변화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다른 인생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은 한번의 변화로 바뀌지 않는다(37쪽). 삶은 여러 순간의 변화가 누적된 결과다. 앞으로 다가올 삶 역시 지금 행동과 결정 들의 영향을 받는다. 작은 습관이 대단한 결과를 낳은 수 있다고 한 이유다. 


나는 많은 사람이 누구나 성공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마다 생각하는 성공의 상과 성격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성공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한 마디로 좋은 습관을 쌓으라는 것이다. 습관을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에 비해 삶에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준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습관이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만의 목표를 세운다. ‘매일 5시에 일어나겠어’, ‘일주일에 책을 한 권 읽을 거야’, ‘매일 자기 전 운동을 할 거야.’… 저자는 행위보다 정체성을 먼저 부여하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형 인간이야’,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야’, ‘나는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야’로. 어떤 행위를 반복할지 고민하지 말고 어떤 사람이 될지 먼저 생각하면, 쉽게 습관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이외에도 이 책은 좋은 습관을 쌓는 방법, 나쁜 습관을 없애는 방법 등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책 앞부분이 재밌다. 저자 고유의 관점과 경험이 잘 들어가 있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갈수록 설명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 책이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건 사실이다. 책을 읽은 뒤로 몇 개의 습관이 생겼다. 지금 이렇게 후기를 남기는 것도 그중 하나다. 사소해 보이는 작은 습관이 이후 내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지 기대가 생겼다. 접힌 부분 펼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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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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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이상한 제목이다.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수식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를 수식하고 있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 제목에는 저자가 이 책에서 밝히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자기보다 낮다고 여기는 이들을 차별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와 이론을 소개하며 차별이 개인과 사회에 어떻게 깊이 뿌리박혀 작동하는지 보여 준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특권을 누려 왔고, 차별을 실천했는지 돌아봤다. 살면서 한 번도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제도와 환경이 다른 이와 비교하면 특권에 가까웠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행동이 차별을 조장했다.

저자는 내가 서 있는 위치와 다른 이가 처한 상황을 자각할 때, 비로소 차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동성 커플이 나타날 때까지 결혼이 특권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한국 거주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이 나타날 때까지 국적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서 어떤 풍경을 보고 있는가. 내가 서 있는 땅은 기울어져 있는가 아니면 평평한가. 기울어져 있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이 풍경 전체를 보려면 세상에서 한발짝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이 세계가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 알기 위해 나와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사람과 대화해보아야 한다. 한국사회는 정말 평등한다. 나는 아직까지 한국사회가 그 이상향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14쪽

차별은 사회 제도나 구조뿐 아니라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연예인들이 예능에서 흑인이나 이주노동자를 비하하는 유머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지적하면서, 고대 철학자와 심리학자 이론을 가져와 사람들이 왜 이렇게 혐오와 비하가 섞인 유머를 사용하는지 분석한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약함, 불행, 부족함, 서툶을 볼 때 즐거워한다고 했다. 웃음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조롱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을 우월성 이론이라고 한다. 토머스 홉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대상보다 자신이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32쪽

"토머스 포드와 동료들은 비하성 유머가 마음속 편견을 봉인해제시킨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어떤 집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보통의 상황에서는 사회 규범 때문에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비하성 유머를 던질 때 차별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 결과 규범이 느슨해지고, 사람들은 편견을 쉽게 드러내면서 차별을 용인하거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설명을 편견규범이론이라 부른다." 32

'선량한 차별주의자', 32쪽

저자는 개개인이 주변에 만연해 있는 차별을 발견하고 이를 없애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 제도와 법 제정이 필요한 일이다. 저자는 이제부터라도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 대신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에 힘쓰고, 차별금지법 등을 제정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했다. 인권 단체에 후원하는 것, 특정 계층 비하(혐오)성 표현 주의하기, 주변에 이 책을 알리기. 이런 것을 열심히 실천하면 될까.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 책을 읽었음에도 나는 지금도 가끔 도로 위에서 운전하는 여성에게 적대감과 혐오를 느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중국인이나 해외에서 온 자국민들에게 분노와 원망을 쏟을 때가 있다."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고정관념을 갖기도, 다른 집단에 적대감을 갖기도 너무 쉽다."(21쪽) 내 안에 있는 편견, 잘못된 관념과 습관을 고치는 게 우선이다.

"무의식적이었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억압에 기여한 행동, 행위, 태도에 대해 사람들과 제도는 책임을 질 수 있고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책임'이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을 성찰하고 습관과 태도를 바꾸어야 할" 책임을 말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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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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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신간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었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으로 알려진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와 그래픽디자이너이자 타이퍼그래퍼 유지원 작가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50여 편을 담았다.

과학자가 저자로 참여하고 제목에 '뉴턴'이 등장하지만,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다. 어렵고 딱딱한 과학 이론을 늘어놓지 않는다. '아틀리에'는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이 책은 예술책도 아니다. 본문에 건축·회화·타이퍼그래피 등 여러 예술 작품이 등장하긴 하지만, 문예 사조나 작품 해석 등을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 책은 에세이집에 가깝다. 과학과 예술, 각각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두 저자는 죽음·보다(see)·가치·언어·꿈·평균·점·검정·소리 등 28개 주제에 맞춰 칼럼을 썼다. 과학과 예술은 글을 쓰기 위한 소재다. 과학과 예술이라는 안경으로 인간, 사회, 문명, 기술을 읽어낸다. 바흐의 칸타카를 다루며 죽음을 생각하고(130쪽), 밀레와 베네치아노프의 풍경화를 보며 민주주의를 생각한다(262쪽).

김상욱 교수는 그림을 보는 일을 좋아한다. 그의 글에는 대부분 그림이 두세 편씩 꼭 등장한다. "미술은 물리다." 머리말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그가 미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미술은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고, 물리는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보다'라는 행위에서 그는 과학과 예술을 연결 짓는다.

그는 '다정한 물리학자'로 불린다. 어려운 과학 이론을 초등학생도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애쓰려는 점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주로 단문을 구사한다.

"미술은 물질의 예술이다"(5쪽), "생명이 흔치 않은 것이라면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139쪽),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175쪽), "이름이 존재를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름은 존재에 의미를 준다."(251쪽)

나는 그가 사용하는 단순한 문장 덕분에 책 읽기가 수월했다. 의미가 선명하고 명확해, 과학과 예술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다 보니,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언어를 창조하고,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마저 만들어내고, 결국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종이 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삶과 예술의 의미에 대한 의문의 답은 우리 뇌 속에 있을 것이다."

'뉴턴의 아틀리에', 40쪽

"생명이 흔치 않은 것이라면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죽어 있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생명이라는 특수한 상태로 잠시 가서 머무는 것뿐이다. 현대 과학은 생명이라는 특수한 상태를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턴의 아틀리에', 139쪽

유지원 작가는 물리학회에 참석하는 예술가다. 그는 작품 속에 숨어 있는 과학 지식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여러 소재가 어떤 성분과 원리, 공법을 바탕으로 작품이 되는지 알기 쉽게 소개한다. 예술에는 과학을 반영한다. 사람들이 작품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재료나 기법, 환경이 주는 영향이 크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예술가는 과학자 그리고 음악가는 수학자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유 작가는 회화에 머물지 않고 건축, 타이퍼그래피, 고전 미술, 조각 등 장르를 구별하지 않는다. 나 같은 비전공자에게는 예술 작품을 다방면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인간의 감각을 믿지 마라. 감각에 의존하며 구축된 의식은 더욱 믿지 말지어다 과학이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바다. 인간의 감각은 더 정교한 도구의 검증을 받아야 하며, 인간의 의식은 더 정확한 수학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자연의 진실은 종종 인간의 감각과 의식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뉴턴의 아틀리에', 160쪽

"인도의 원숭이들 중에 꼬리가 아주 가늘고 긴 종이 있었다. 꼬리를 보니, 원숭이와 쥐가 닮았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영장류와 설치류가 저리 가까웠던가? (중략) 파인애플은 벼목에 속한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파인애플과 벼의 껍질이 닮았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뇌로 알면서도, 게으른 눈과 뇌는 이상하게도 그걸 모른 척했다. 낯선 환경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오류 많던 각자의 머릿속 단어 지도에 지형 변화가 일어난다."

'뉴턴의 아틀리에', 212쪽

이 책은 단순히 '과학과 예술의 만남'으로 표현하는 건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두 저자가 과학과 예술이라는 각 전문 분야를 활용하면서 접근하려는 대상은 인간이다. 현대 사회를 분석하고 인간 본성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과학과 예술 관련 지식을 쌓았다는 생각보다, 나는 어떤 사회를 어떻게 살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것이 모든 학문이 추구하는 공통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과학자들이 연구와 실험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인간다운, 보다 나은 삶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이 책이 서점에서 과학이나 예술이 아닌, 인문학 서가에 꽂혀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다 보니,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언어를 창조하고,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마저 만들어내고, 결국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종이 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삶과 예술의 의미에 대한 의문의 답은 우리 뇌 속에 있을 것이다." - P40

"생명이 흔치 않은 것이라면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죽어 있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생명이라는 특수한 상태로 잠시 가서 머무는 것뿐이다. 현대 과학은 생명이라는 특수한 상태를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P139

"인간의 감각을 믿지 마라. 감각에 의존하며 구축된 의식은 더욱 믿지 말지어다 과학이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바다. 인간의 감각은 더 정교한 도구의 검증을 받아야 하며, 인간의 의식은 더 정확한 수학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자연의 진실은 종종 인간의 감각과 의식 그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 P160

"인도의 원숭이들 중에 꼬리가 아주 가늘고 긴 종이 있었다. 꼬리를 보니, 원숭이와 쥐가 닮았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영장류와 설치류가 저리 가까웠던가? (중략) 파인애플은 벼목에 속한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파인애플과 벼의 껍질이 닮았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뇌로 알면서도, 게으른 눈과 뇌는 이상하게도 그걸 모른 척했다. 낯선 환경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오류 많던 각자의 머릿속 단어 지도에 지형 변화가 일어난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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