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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상황들을 손바닥 안에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제로 우리의 기억은 이처럼 망각을 통해 잊혀지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무심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것들이 밖으로 방출되지 않고 꿈을 꾸는 것처럼 잠에서 깨어서 침대에서 일어나고 보면 어떤 꿈을 꾸었는지 모르게 그저 놀라기만 하고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남자를 자리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이러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판단에 의해 대처를 하고 욕망을 포기하기는 하지만 어떤 말을 하지는 않는다.

기억을 하는 것은 그저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를 하고 있으며 살피듯 바라보는 모습들이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족 관계라는 것이 은밀한 말들을 주고 받기보다는 명확한 기억들을 지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책 속에 담겨진 자리가 커다랗게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슴 아픈 나이의 모습들, 그리고 얼굴 가득한 전쟁에 대한 공포.
이런 이미지들이 책을 읽어가면서 계속에서 나를 파고들어왔다.
조금 더 살펴보면 그들의 삶은 형편과 감정들에서 다양하게 보이고 있다고 여겨졌고 나를 데려가는 결핍의 삶들은 이미 시간의 다른 모습들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일상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다 읽고나니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서로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모습은 실제로 우리가 어떤 느낌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담담하게 읽혀지는 책에서 무뚝뚝한 아버지의 모습이 얼핏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와 분리되지 못하는 삶들이 이 책의 여기저기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과 웃음들이 실제 아버지의 감정들과 많이 닮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에 그러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내비쳐지는 감정들을 계속해서 읽어가다 보니 나의 추억 속에 담겨진 한 페이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의 자리는 그런 면에서 보면 슬픔을 침묵으로 오래도록 삼켜야 할 것 같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가슴으로 읽어내는 나를 보게 되었다. 읽는 시간들이 이제는 명확하게 설명되어진다. 아버지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흔들흔들 걸어가는 아버지를 이번주에 찾아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