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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민식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결여된 시간들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며.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생계를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할 수 없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도랑에게 이제 남은 것은 지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뿐이다. 한때 잘 나갔던 도랑에겐 한 여자의 배신과 함께 자신의 삶의 일부분, 아니 전부를 온전히 바꿔야했다.
직장은 그를 더 이상 선택하지 않았고 그는 더 이상 걸어야 할 길에서 길을 잃은 채 새로운 일을 찾아 헤매야 했다.
고기집에서 불판도 닦았지만 하루 벌어 살아가고 있는 처지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쯤 되니 고역열차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는 뜻밖에 라마를 만나면서 다시 추락했던 삶을 회복해 간다.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건 힘든 삶에도 새로운 시선과 관심을 기울이면 살아갈 일들이 앞에서 다가오고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도랑의 앞에도 이루어졌고 이제는 새로운 꿈을 꾸며 라마를 산책시키고 있다.
라마와 함께 산책하면서 했던 생각은 어쩌며 지난날에 대한 아픔과 상처로 읽혔고 우리가 그동안 벗어나고 싶은 사회의 한 부분으로 도려내고 싶은 날들의 풍경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선을 낮춰보니 인간의 욕망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낮은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한 하나의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보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저마다 상처 하나씩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때론 좌절을 하지만 그 속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일이지만 그 속에서 서로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좌절을 겪게 되면 마음이 단단해진다. 이 소설을 보면서 이런 말이 떠올랐고 이 소설 속 전반에 깔려 있는 힘든 삶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배경처럼 서려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도랑을 천천히 쫒다 보면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고 이어질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인상을 읽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지난날의 추억에서 꿈을 꺼내 단순하지만 걱정 없이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모든 것들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개를 산책하는 일도 그런 부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도랑은 라마를 산책시키면서 더 낮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고 그 안에 다른 것들 보다는 즐거움과 행복 등 긍정적인 것들을 넣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는 다른 의미에서 보면 자신이 받고 싶고 본받을 만한 일들을 그 속에 담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을 다 읽어 갈 때쯤 나도 도랑처럼 새로운 삶을 꿈꾸고 새롭게 세상을 향해 시선을 던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생각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보면 반반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것들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는 했다. 더 나아가서는 진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게 주어진 길에서 힘을 더 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한 진정한 의미의 세상과 각박한 모습에서 얼마나 나를 끄집어 낼 수 있는지를 이 책을 보면서 가늠해 보기도 했다.
삶의 이면은 늘 긴장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음을 이 책을 덮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또 우리는 그 삶에 발을 내딛고 있는 존재임이 틀림없다는 하나의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제 그 길에서 나는 또 다른 세상과 만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세상에 나를 내보내야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이 소설을 보니 아직은 살아갈 힘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