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령 하는 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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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그리고 추억. 어찌 보면 이 두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재앙이 닥쳐 모든 것들이 짓밟혀졌다면 우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것이다. 절망과 좌절. 우리는 이 단어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다양한 것들을 상상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지 못하고 어지러움을 호소할지도 모른다.

강영숙의 이번 단편모음집에는 이렇듯 우리가 형언할 수 없는 재앙들이 닥친다. 실제로 나타나는 공간의 의미는 우리에게 어떤 목적을 찾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없음과 비슷한 느낌의 배경 묘사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가고자 하는 곳도 찾을 수도 없다. 단지 우리가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떤 시간의 줄기뿐이다. 이는 아무것도 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소설을 더욱 깊이 읽었다면 너무 커다란 재앙으로 인해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소설은 이렇게 재양으로 덮친 도시의 한 가운데를 비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철저하게 따라가게 만든다.
한편의 단편만 읽은 사람이라면 너무 앞서서 생각하지 말고 읽기를 권한다. 너무 앞서서 읽게 되면 작가가 그리고 있는 배경적인 묘사를 보지 못하고 그냥 스치는 하나의 풍경만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그려진 묘사를 통해 우리는 그냥 머릿속엔 어느 도시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그만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갖지 못했지만 죽음의 도시를 읽으면서 아, 이것이 이 작가의 매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작가의 배경 묘사는 어느 영화의 장면보다도 더 큰 스케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면을 교묘하게 끄집어내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생각을 차단해 버린다.
그렇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면 일단 합격.

그런 느낌으로 또 다른 작품을 접한다면 새로운 작가의 길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우리는 그러한 도시를 걷고 있고 처음 시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초차 잊게 된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이러한 느낌이 강하게 들고 철저하게 계산된, 어쩌면 구체적인 도시의 지명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여기까지가 심리적인 면이었다면 또 다른 작품에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새로운 길은 없다. 재앙으로 하나의 길만이 생각을 모으게 한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경고이며 일상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재앙이 휩쓸고 갔지만 그러한 잔혹함 속에서도 우리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실제로는 철저하게 계산된 생활의 연속이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을 따라 읽지 말고 소설 속의 묘사에 집중해서 읽으라고 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공포가 마음에서 더욱 크게 보이고 어느 순간 희미했던 것들이 하나씩 나타나게 된다. 어둠이 있었다면 이제는 밝은 빛을 보게 될 것이다.

도시는 폐허가 되기 직전이만 마음에는 희망이 숨쉬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작가가 그리려고 하는 도시의 풍경이 아닐까
모처럼 심리적인 면이 강한 소설을 읽었더니 도시의 다른 풍경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심호흡을 하고 또 다시 길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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