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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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자신에게 잔인할 수 있는 시간이 다른 사람에겐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은교를 읽으면서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를테면 쓸쓸한 골목길에서 모퉁이를 돌면 불이 환하게 켜진 나의 집이 보이는 것처럼 앞으로 읽어갈 페이지를 조금씩 들추면서 읽었다. 책의 행간마다 생생하고 켜켜이 쌓인 이야기에 나는 슬퍼하기도 했고 때론 말없이 순응하기도 했다. 모든 것들이 하나이 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외부적인 것에서 소설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좋았다.

객관적인 사실이 하루가 지나고 일년이 되면 아무도 모르게 가짜가 되어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나의 그물망처럼 그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와 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세상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지금, 왜 은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가지의 이유를 찾아냈다.

어쩌면 우리는 작은 진주조개처럼 아름다운 것들에 흠뻑 취해 늘 어려운 것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채우려는 욕망 탓에 그 깊은 수면의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기다린다. 또한 잠시 뒤, 아니 영원히 듣지 못하는 대답을 자신의 목소리로 뱉어내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는 갈망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작가는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경험의 응답률을 최소한 적게 나타나게 만든다.

이것을 나는 박범신만이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소설의 힘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하나의 관련된 문제에 대해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한 가지의 방법만을 온전히 보게 한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나면 놀랍게도 내가 그 사실을 밝혀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같다. 처음엔 하나의 연예소설처럼 남녀간의 사랑만을 쫒아 읽었었다. 그러나 한참을 읽다보니 내가 태연하게 바라보았던 은교에게서 급격한 변화가 읽어나 있고 이것이 주변의 환경적 요인에서 오는 우울함의 결론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일상에서 지각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우리의 마음속엔 누구나 하나쯤 욕망의 샘이 있고 그 샘을 제어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필요한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고 새롭게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멈춰 있는 기차에 발을 올려놓고 기차가 출발하는 것을 차창으로 보는 것처럼 은교는 자신의 의지대로, 고집대로, 또한 세상 물정 모르고 흘러가는 대로 마음을 내어주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랑을 한 상대방에 대한 벼려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러한 생각들이 내 마음으로 간통해 들어오면서 내 마음의 절반을 송두리째 가져가는 보게 되었고 믿기지 않았지만 내가 좀더 순해졌다고 밝히고 싶다. 또한 존재하는 것들에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그 경험의 틀을 더 커지고 생각의 틀 안에 갖추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기로 했다. 경험이 환경을 변화 시키듯 은교를 읽으면서 그 속에 담겨진 하나의 절박함도 보았고 그와 더불어 탄력적으로 나누는 사랑의 흔적도 발견하게 되었다. 하나의 시선만이 아닌 다양한 시선을 던지게 한 소설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이고를 떠나 새로운 영역을 마련해 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이 소설을 읽은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일 뿐이다. 당신도 은교에게 흠뻑 빠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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