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정도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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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쪽 편을 붙잡고 있는 소설을 읽어낸다는 것은 많은 힘을 요구한다. 그것은 소설의 성격 탓이 아니라, 올곧게 읽어내려는 내 책읽기 탓이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낙타를 처음 카페에서 연재글로 읽으면서 모니터 화면으로 흘러나오는 글자들의 모음을 몸소 체험했다. 그때 이미 벌써 나는 주인공의 상처를 군데군데에서 읽어냈고 가끔은 멍하니 모니터를 향해 나를 가만히 놓아두기도 했다.
실은 늦은 저녁, 밤을 넘어 새벽이 가까운 시간이라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망연자실한 표정만을 모니터 화면에 놓아두었던 것 같다.
연재가 끝나고 책으로 묶였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다시금 펼쳐 들었다. 이상스럽게도 그 상처는 인쇄된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내 마음을 후벼 파고 있었다.

처음 정도상 작가의 글을 읽는 사람에겐 이 소설이 어떻게 비춰졌을지도 모르지만 나처럼  여러 해 동안 정도상 작가의 글을 읽었던 사람으로서는 작가의 작품이 변해 있다는 것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간 역사의 한 자락을 붙잡고 묵직한 소설을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었던 것에서 이번엔 생의 한 자락을 끌어내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그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 자신이 받았을 고통이 더해졌다는 것을 나는 책이 나오고 신문 기사를 책보다 먼저 보면서 이 작품에 대한 주변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작품을 읽기 전에 다른 사람의 글이나 책에 대한 서평, 기사 등을 참고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것들을 참고하게 되면 작품을 올곧게 보지 못한다는 평소의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달랐다. 오래전 내 손에 이 책이 들어 왔고 다양한 소식들이 책읽기보다 먼저 들려오고 눈에 보였지만 오히려 그러한 부분들이 책을 읽는데 더 집중을 하게했다.

길게 목을 뺀 낙타, 그리고 사막. 그 속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마음이 아픈 것은 진단할 수 없는 슬픔이 그 안에 서려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책을 들여다보는 오른쪽 눈이 충혈 되어 옴을 느꼈다. 안과를 일주일 동안 다녔고 눈을 편안하게 하라는 의사의 진단을 무시한 채 이 책을 눈의 아픔을 참아 가며 읽었다. 연재 당시 느꼈던 마음이 또 다시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비 사막으로 떠나는 아버지, 그 안에서 멈출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생의 이별이 마음으로 느껴졌고 나에게도 전해짐이 컸던 탓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 읽기를 중도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의사의 진단은 무시해 버렸지만 소설은 진정, 내가 가질 수 없는 경험과 세상을 다 잃은 슬픔 등 다양한 색깔과도 같은 최고의 느낌을 전해주었다.
의사에게서 진단서에 따른 처방전을 받으면서 나는 의사에게 이 책이 있어 그 처방전은 당분간 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마음으로 이야기 했던 모습을 보면서 낙타가 사막을 걷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을 오래도록 떠나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욕심을 지울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가져보기도 했다.

단번에 소설을 읽으면서 정확하게 작가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간파하고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이 작품에 대한 이면의 목소리의 도움을 받으면서 읽었더니 더 깊고 더 큰 울림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함께 경험하게 되어 보람이 컸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지난날 펴낸 소설들을 또 되짚어 보는 것도 보람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낙타, 낙타는 걸어가고 있지만 사막 위의 낙타에게도 상처가 보인다면, 내 증상이 중증 환자의 모습일까. 나는 단번에 그렇지 않다고 반박해 버린다.
소설이 보여주는 영혼과의 만남과 멈출 수 없게 만든 매력은 안과 의사의 진단에도 다양한 목소리를 듣게 했다.
열심히 읽었고 내 모습에 비춰보면서 많이도 침묵했고 책을 읽는 동안 충격을 받았으며 조명 아래에서 멍하니 있기도 했다. 또한 참 많이도 울었다.
당분간은 주변의 목소리에 기대어 책을 읽을 것 같다. 그리고 너무 너무 깊게 빠지자 말라는 내 동거인의 말을 무시한 채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내가 있을 것 같다.

사막은 내게 낙타가 지나는 길이 아닌 여행의 여정에서 만난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만들었다. 낙타가 오래도록 사막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낙타를 읽는 내내 안과의사보다도 더 내 마음을 알고 슬프게 울도록 내버려 둔 동거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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