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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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피로회복제이다. 짧은 명제에서 출발하려고 한다. 누군가 아니라고 소리를 친다면 그 사람에겐 그런 의미라고 단정 지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몇 주 전만해도 나는 소설 ‘컨설턴트’를 전혀 읽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당시엔 무언가에 무섭도록 안심을 하고 있었고 지금 현재의 삶에서 나를 돌아보게 할 만큼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1억 원 고료 당선작, 또는 수상작.
이러한 문구가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때쯤 컨설턴트가 내게 도착했다. 인생에서 짠 물을 먹어본 사람에겐 이 소설은 부드럽게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삶에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정리 해고가 되고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이탈 된 사람. 소설 속 주요 모티브인 살인 청부는 우리에게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감싸고 있던 삶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읽어가면서 깜짝 놀랄만한 일은 킬링 시나리오를 쓰는 일, 주인공이 쓰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고 나면 왜 그토록 당황하는 삶의 모습에서 왜 그렇게 크게 놀랐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루한 표현들, 자본과 나 나와 자본으로 이어지는 삶을 내다보다 보면 왜 사회는 나에게 칼을 대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아직 그 사회에 발을 내딛고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을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쪽에선 배가 고파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쪽에서 배가 터질 만큼 많은 음식을 다량으로 섭취해 비만에 허덕이고 있기도 한다.
소설은 이렇듯 자본이 가져온 폐단의 모습을 주인공으로 하여금 사회적인 면을 낱낱이 풀어간다. 그리고 그 사회에 던지는 비판의 목소리를 삶에 커다란 울림을 가져오기도 한다.
컨설턴트, 제목에서 느껴지는 가라앉으면서도 무언가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한 발음의 제목이 이 소설 속 분위기의 반을 제시해 준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내가 느낀 것은 어디까지나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배경적 흐름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삶에 내가 당도해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까.
생각만 해도 조금 끔찍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그 시나리오를 완성해 가는 시간에 과연 주인공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감정을 제대로 추스를 수 있을까
사회에 닿아 있는 내 발은 과연 사회에 담그고 있었던 발을 의미하는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쯤 소설 속 주인공은 명확하게 해답을 내린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는 것과 명확하게 묻고 답하는 방식이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그 문제가 흘러간다는 것이다.
소설이 주인공의 감정에 의해 서술되다가도 사회의 한 면과 일치하거나 불일치하는 면들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부분에선 우리가 속한 사회가 이 정도로의 모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경악의 표현 섞인 말을 뱉어내게 만들기도 한다.
아플 만큼 긴장하게 만드는 소설, 뒤를 보기 위해 천천히 읽어가야만 그 의미를 제대로 느끼게 해 주는 소설.
‘컨설턴트’는 그렇게 어떤 선택의 여지를 느끼기 이전에 이미 내가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느껴야 제대로 읽고 느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재미가 오늘처럼 맑은 하늘에 점 하나가 찍어져 있고 그 점이 파장을 일으켜서 새로움을 전해주었다고 감히 말한다면 누군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할지.
내겐 선택의 여지없이 가슴을 헐떡이게 하고 빠르게 흐르는 속도감의 소설이 그렇게 긴 밤을 깨어 있으면서 욱신거리는 삶의 하나의 표상으로 느껴진다. 지금 어딘가에서 사회에 발을 담그고 있다면 제발, 그 발을 빼지 않기를 바래본다.
그렇게 있다 보면 소설은 우리에게 자신의 일을 시킨 사회나 회사의 정체를 알게 해 준다. 무서운 존재가 도사리고 있어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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