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사랑이란...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끝없이 추락하는 자의 모습은 어떤 형태로 어떤 행동으로 나타날까? 나이를 먹고 어느덧 자신의 위치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나이. 평균 연령 49세.
그러한 가족의 위치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까. 안부 전화를 걸어온 엄마는 아들에게 평상시와 다름없는 말들을 풀어 놓는다. 그리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아들의 안부를 기대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아들은 평상시와 다른 말을 수화기 너머에서 던진다. 

천명관의 소설은 이런 장면으로 시작된다.
내가 천명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맺고 끊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등단작이기도 한 고래를 통해 작가적 역량(?)을 지레 짐작하고 있었던 이유로 이번 장편소설도 읽어가기 시작했다. 이전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흩어졌던 가족이 한 곳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살만한 세상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다만 자신이 눕고 먹고 할 곳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나는 있기는 하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곳은 다름 아닌 엄마의 집이다.

엄마의 집을 생각하다 전경린의 소설 ‘엄마의 집’을 잠시 떠올려 본다. 소설은 거구의 형과 함께 지낼 충무로를 전전했던 자신과 비교가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내려지는 결론, 자신도 엄마의 집에서 지낼 자격이 있다라는 것이다.
오늘은 엄마가 닭죽을 먹으러 오라고 했으니깐. 더더욱 그런 이유가 설득력이 있고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 한 곳이 아련해지는 것도 잠시 접어두고 엄마의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마음을 굳히기 시작한다. 

초대되지 않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닮은 엄마의 집에 살기로 결정하고 마음을 조금 풀어놓는다. 그리고 잠시 후, 가족들이 하나둘씩 엄마의 집으로 모여든다. 저마다 각자의 사연을 한 아름 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엄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세 남매의 모습에서 어른의 모습도 아이의 모습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세상이 자신들을 괴롭혔고 사람에게 지친 자신들이 잠시 머물고 있는 곳은 엄마의 집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다면 잠시나마 엄마의 집에서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다른 생각들을 지워 버린다.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들의 평균 나이에서 볼 수 있듯이 잘 나가고 싶고 당당하고 싶었던 자신들이 작고 초라해짐을 느낀다.
엄마의 집에서 발견되는 물건들의 닳고 닳은 흔적들이 마치 자신들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가져오게 만든다. 천명관이 그리는 세계는 어쩌면 이처럼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을 읽어가는 사람들에게 읽는 내내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갖게 만들게 하려는데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가 그려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한편의 드라마나 한편의 영화 같기도 하다. 

책을 읽어가는 나와 가족의 모습이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천명관의 소설이 주는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읽는 사람을 배려한 소설의 속도를 잘 맞춰주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읽을거리 하나는 과연 이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저절로 갖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평균 나이 49세의 어른도 아이도 아닌 사람들에게서 나는 과연 가족의 비밀이 나를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부잣집 딸이나 아들이라면, 가끔 그런 생각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이 주는 가족의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나에게도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했다. 그리고 콩가루 집안이라고 단정지었던 처음의 생각에서 어쩌면 가족이란 가장 가까이에 있어 비밀을 나누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 속 가족의 모습이 진정한 우리네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했다.

살아가면서 베풀 수 있고 나눌 수 있다면 가족의 구성원이란 이름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의미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따뜻함을 가져갈 것이다.
핵가족화 되는 지금의 사회에서 이 소설이 던지는 실패한 사람들의 만남이 과연 실패한 모습만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 

이 소설을  한번 손에 들고 읽어가고 있다면, 내려놓지 말고 그 자리에서 읽어가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귀뜸해주고 싶다. 이것은 한편의 영화를 볼 때 밖에 나갔다가 와도 그 영화는 자신이 본 부분부터 보여주지 않는 것을 빗대어 이야기 해 주고 싶다. 그만큼 재미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 빠져 들었다면 이제 헤어 나오지 말고 그 자리에서 마음껏 느끼고 가족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고 조금 더 나아가 가족의 파란만장한 의미를 마음에 새겨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소설은 막장 드라마라기보다는 가족 드라마 한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