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티유 광장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 사람들에게 시청 광장의 의미와 비교해도 될지... 그것과 비교를 한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느낌을 가져다줄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의미를 갖고 나는 ‘바스티유 광장’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레온 드 빈터의 장편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은 파올이 쓰고 있는 ‘바스티유 광장’이란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책 속의 또 다른 책 이야기를 작가는 펼치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엔 어쩌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시간에 기대기도 한다. 과거의 모습이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대변한다는 말이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모습을 과거에 기대어 현재 어떤 부분들에 영향을 주었는지 그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삶은 시간의 흐름대로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의 흐름대로 정리하고 해석하려고 한다. 이 소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좋은 것이 파올이 역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가족의 울타리에 얽매인 한 중년 남자의 처절한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유태인으로 살아온 운명과 진지한 삶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부분, 또한 자신의 형을 찾아 나서는 모습은 어쩌면 프랑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쟁의 모습과도 비견되는 부분으로 읽히기도 한다. 읽어갈수록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한 단면을 상처와 현재의 모습을 적절하게 섞어놓아 삶을 아니 지금의 모습을 더욱 더 진지하게 해 주는 면도 발견할 수 있다. 느낀다는 것은 무언가의 영향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내 과거의 삶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전쟁이란 삶을 두 동강이의 마음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모습은 늘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넓은 광장은 그래서 늘 사람들로 부적거리는 것이며 그 속에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을 통해 작가는 삶의 모습, 즉 내면의 마음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한 흔적을 이곳저곳에서 다양하게 보여준다. 전쟁 속의 가족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보이고 있는 것들을 읽으면서 나에겐 간접적인 체험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늘 굶주리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다양한 다큐멘터리에서 느꼈던 느낌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다양함이 더욱 더 강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상상력을 통해 다양하게 뻗어가는 생각으로 인해 그 모습이 더욱 크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읽은 소설들 가운데 비교적 짧은 분량의 이 소설이 나에게 고독을 불러일으키는데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