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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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비밀은 늘 우리의 가까이게 있게 마련이다. 늘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따지거나 되물어보는 법이 없다. 이것은 가족이란 울타리가 주는 편안함에서 오는 일종의 주어를 뺀 나머지의 문장만으로 대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에 진지해지려고 할 때 그 가족의 구성원과 그 울타리는 비와 바람, 그리고 눈에도 끄덕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놓인다. 그러나 가족과의 단절은 울타리를 타고 넘을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종종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편안한 존재와 존재와의 만남이기에 더더욱 쉽게 잃어버리고 그렇게 살아가도 된다는 팽배한 마음이 더욱더 무방함을 부추긴다.
가족 간에 늘 무언가를 바라고 늘 속삭이지만 개개인을 살펴보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이현의 신작 ‘너는 모른다’를 읽으면서 그 가족의 모습은 철저하게 개인의 모습을 띄고 사회로부터 분리되려고 하는 존재로 읽힌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에선 서로 간섭하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가족이란 이름이 주는 안일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늘 개인으로 머물기를 바라는 각자 자신의 바람이 충분하게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편안한 일요일, 그저 자신의 주변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온한 느낌을 하루 종일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 행복을 멀리에서 찾으려고 시도를 하거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지금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만이라도 행복하면 그 뿐인 것이다. 

평소 삶에서 찌든 것들을 달콤한 휴식으로 유보하거나 없애려고 할 뿐이다. 그리고 가족 간의 모습을 서로 이끌어주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에게 다가가지 않으려는 몸짓들만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단절된 모습과 그 속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우리의 참 모습이며 진정으로 그 속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어찌 알 수 있는가.
소설은 우리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하면서 되물어본다. 슬픈 대답이다. 그리고 우리가 안고 있는 커다란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물음일지도 모른다.
막내딸의 실종이 한 가족의 비밀을 겉으로 들춰내게 하는 재미도 있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 바람이 부는 방향에서 가족으로 모습이 단절되게 보이고 있는지 사뭇 궁금했다. 그리고 책장을 모두 덮으면서 도시의 가족에게 보이는 이면의 모습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면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의 비밀은 모두 가족의 비밀을 들여다 볼 때 가능한 일이고 단절된 것은 누군가 다가가려할 때 조금씩 금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에게 이번 소설이 안겨주는 새로운 소재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의 이미지를 전작에서 읽어왔던 우리는 이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회의 확장과 개인사적인 모습들은 인간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치열한 순간이 사회와 내가 거리를 두고 있을 때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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