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를 그리기 위해 전국을 걸었던 김정호. 그의 삶은 여정인 동시에 어쩌면 우리가 모르고 있는 내면에 또 다른 자아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는 김정호를 현실에서 살 수 없는 한 낫 그리움의 존재로 여겨 기록조차 해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했는지. 당시의 사회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양반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호에 대한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생각과 배웠던 지식의 한 줄기를 가지고 작가 박범신이 그려낸 ‘고산자’를 읽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사진을 보듯 그 시대의 모습을 재현 놓은 이 소설은 내 생각을 멈추게 했고 역사가 가르쳐 주었던 약속과도 같은 형태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적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작가 박범신이 그리고 있는 김정호에 대한 상상력을 보고 싶어 이 책을 펼쳤고 그 예상은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는 이 소설을 읽은 것을 보람으로 여기고 이 소설을 선택한 나의 눈높이는 조금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김정호, 작가가 그려낸 김정호. 나는 잠시 내가 알고 있는 김정호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렸다. 아니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 가슴에 담아 두었다.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 소설을 읽어가면서 내가 주목을 한 것은 어떻게 대동여지도를 그리려고 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한 여인이 누구이며, 그 여인을 소설에서만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소설을 계속 읽어나갔다. 뜻밖에 김정호가 지도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죽음을 잊기 위해 또 하나의 모습을 다시 찾기 위해 지도를 그리고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여정과 같이 바람에 휩쓸렸다. 백성들의 삶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지도를 정확하게 그려 넣어 편안세상을 보게 하고 싶은 야망으로 발전했고 잘못된 지도를 조금씩 수정하며 자신의 생각을 담으면서 조금씩 완성을 해 갔다. 젊은 시절의 김정호. 드문드문 사랑에 싹트는 나이가 아닌 한 사람을 좋아하는 운명과도 사랑이 그의 곁을 비켜가면서 그는 하나의 일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그것이 대동여지도를 만들고 완성하는 일이다. 그는 그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며 백성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고 여겼다. 평민의 몸으로 태어나 자신의 신분으로 하나의 뜻을 품고 그것을 지켜 갈 수 있는 길은 정착하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그동안 마음에 품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완성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겠지만 당시의 상황이 그것을 쉽게 놓아두지 않았다. 그리고 목판본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는 일부 성공을 거두었지만 지명과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의 모두를 다 담아내지 못했다. 여러 여건이 다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그려낸 김정호, 고독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면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었던 사내. 그의 흔적을 찾고 그와 호흡을 하고 그가 서 있는 경계에도 한번 들어가 본 것으로 ‘고산자’는 내 맘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높은 산을 벗 삼아 살면서 산 사람이 다 되었을 것 같은 김정호가 작가 박범신을 만나면서 나라를 더욱 위하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시대가 아직 그를 더욱 그리워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모습과 그가 남긴 자취가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삶 속에 잠시 마음을 두었던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은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처음의 마음에서 그를 많이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소설을 읽어갈수록 커졌고 그는 발로 모든 것을 해결했던 인물이 아닌 그가 세상을 보고 통찰력을 통해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짚어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 더운 여름에 우리가 켜고 다니는 네비게이션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고산자를 산에 올라가 다시 읽어봐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