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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릿 - 한동원 장편소설 ㅣ 담쟁이 문고
한동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환경이 사람을 꿈틀거리게 한다.
까까머리 고등학생들의 모습과 1980년대 후반의 모습은 현재와 한끗 차이의 모습을 보인다. 늘 머릿속에 오래도록 흐르고 있는 음악은 그래서 어쩌면 그 당시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후반의 모습은 민주화투쟁 등 사회 전반적으로으로 흐르고 있었던 사회적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 시기였고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꺼려하던 시기였다. 그것은 교사들에게도 전도가 되었는지 우발적으로 낸 사고에 대해 상당 부분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교사의 권력에 의해 좌우지 되었다. 이러한 억압된 상황에서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작가 한동원은 이런 물음에 대해 그동안 잘못 인식되었던 것들을 짚어내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찾아갔다. 그리고 찾아 낸 밴드로 인해 잠시나마 학교로부터의 해방과 사회제도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돌발적이지만 자신이 학생이란 생각을 잠시 잊고 자신만의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는 동광을 주인공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똥광이란 별명은 그래서 이 소설을 더욱 더 빛나게 하는 별명인 것 같다. 그리고 우연히 기타를 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그 모든 것들이 공식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음악을 하고자 하는 원동력도 물론 필요했겠지만 주변에선 많은 사람들이 자라면 법조계나 언론계 등 소위 잘 나가는 곳으로 취직을 하거나 공부를 하도록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광은 이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록 그룹을 만들었고 이것은 자신의 선택에 있어서도 탁월한 일이었다. 한창 사회의 억압에 있어 강하게 표출하고 싶은 나이, 고등학생의 눈에는 모든 것들이 강렬하고 자신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내세우며 존재감을 갖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친구들, 특히 함주석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자신의 옷 스타일부터 자신의 모든 부분들을 체크하고 내세우기를 좋아하는 그들은 자신의 모든 부분들이 사회와 동등한 눈높이를 가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된 아이들과 함께 대충이 아닌 체계적인 인기밴드를 만들어내고 여러 가지 구상된 그림들이 하나씩 실제의 모습으로 튀어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제스처들은 음악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들에겐 행복할 수 있고 누구보다도 성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음악이 그들에겐 전부였고, 오디션은 하나의 꿈을 위한 통과의례와 같은 관문이었다.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들은 음악에 미쳐있었고 열정적이었으며 그것의 증거로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듣는 것으로도 모자라 모조리 외우고 다녔다. 이때까지는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시작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됐다. 그러나 그들에겐 거대한 학교라는 공간이 음악이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꿈과 희망을 찾고 안정을 찾아갔다.
공연 준비로 바쁜 그들에게 찾아온 또 한 번의 위기는 연습을 통해 단호하리만큼 자신의 입장을 보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고 또 좋아하는 뮤지션은 다르지만 언제나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를 꿈꾸는 모습들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의 당당함이 엿보였다.
그 꿈의 실현은 하나의 작은 울림을 가져왔고 누가 보아도 당당당한 모습을 심어주었다. 한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상황들은 그들의 정신력을 더욱더 강화시켰고 두드리고 울리는 음악의 선율은 세상의 깊이를 드러냈다. 처음 음악에 대해 생각했던 동광의 모습은 진지했고 늘 쓸쓸한 모습도 이제는 의젓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함주석의 기타 소리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그리고 그들이 평소 추구했던 음악을 끝까지 놓지 말고 이어갔으면 하고 바래본다.
읽어가는 내내 음악의 선율이 느껴져 소설에서 보이고 있는 1980년대의 모습이 음악적 열정과 함께 내 맘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아버렸다. 읽는 내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