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깜깜한 밤에, 낯선 세계에 빠져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치는 밖의 바람 소리에 잠시 생각을 해 본다. 모든 것이 싫어지고 희미해져 이제 다시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면, 그리고 다시는 올 수 없는 그런 무의미한 일에 나를 던지고 있다면 어떠할까. 자살의 순간 기억력은 최고조에 오르고 미처 밝히지 못했던 속사정은 이제 다른 누군가를 통해 알려야 한다. 소설은 우체국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무언가를 보내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이기도 한 테이프를 통해 사건은 이어지고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우리는 살아가는 지금에도 왜 낯선 풍경이 없겠는가마는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 낯선 풍경은 지금 현실의 문제와 맞물려 현장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 또한 전체적으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제 더 이상 말을 들어줄 수 없고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아 일어난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을 하겠지만 당사자인 본인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엔 어느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슬픔은 모든 것을 어깨에 이고 있는 것처럼 무거움을 넘어 절망감을 가져온다. 테이프는 더 이상 듣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소중한 것으로 인식해야 할 때가 된다.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테이프의 행방에 따라 작가는 왜 그녀가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극단의 모습을 보였는지, 왜 많은 것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담겨진 테이프를 듣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다양함과 더불어 슬픔이 느껴진다. 이야기는 작가의 노력에 의해서인지 균형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커다란 매력이다. 슬픔에 대해 어느 한 곳에 집중을 했다면 이야기의 흐름과 구성에서 작은 틈을 보였겠지만 이 소설은 테이프를 따라 사건이 진행되면서 작은 단서와 충격을 완충하는 역할을 해 주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선을 고정 시키게 만든다. 눈은 소설을 읽고 있고 머릿속은 세상의 풍경에 잣대를 놓지 못하게 한다. 소설에만 집중을 할 수 있었고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소설이 지니고 있는 힘일 것이다. 클레이가 테이프를 듣는 장면과 그녀를 자살로 이끌 수밖에 없었던 주변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풍경과 많이 닮아 있다. 그리고 계속된 진실을 가리지 못하고 뒤에서 떠드는 루머 속에 그 진실은 묻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에 또 다른 시선을 돌리는 현재의 모습은 이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으로 비춰져 한번쯤 이 소설을 읽고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타인의 불행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루머의 시작되고 부풀려지며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그 모습에 계속해서 좋아만 한다면 루머의 부피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보기 좋아 보이지 않게 된다. 삐딱한 마음으로 시작된 비딱한 시선의 루머, 타인을 조금이라도 존중했다면 테이프에 녹음된 해나의 음성은 듣지 않아도 됐을 것이며 해나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녀를 자살로 몰았는지. 사건의 진실은 조금은 밝혀지고 계속된 루머로 인해 그녀의 자살과 관련된 13명의 사람들의 표정과 마음이 느껴진다. 소설은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을 작가는 배려해 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소문은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무엇이 중요한지. 타인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보다면 나쁜 소문, 루머의 크기는 감당을 할 수 있는 모양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진실을 위해 조금은 귀를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가볍지 않은 소재를 담담하게 그려낸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