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그대로 읽으면 ≪이선 프롬≫, 나는 ≪겨울≫이란 이름으로 번역 된 소설을 읽었다. 내가 읽은 이 소설엔 슬픔과 절망이 이분법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또한 작가의 내면 풍경으로 소설 속은 온통 겨울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색하기 좋아하는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대학 다닐 때, 작가에 대해 이미 여러 번 작가의 이름과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선배에게서 들었었다. 그리고 몇 해 전 그녀의 작품을 우연히 원서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책 선물을 받았는데, 원서였고 그녀가 바로 ‘이디스 워턴’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미국 현대문학에서 빠질 수 없는 고전으로 일컫는다. 그리고 내가 읽은 이 작품은 그녀의 대표작 중 제일 전면에 내세워진 작품이다.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갈 때쯤, 마침 번역되어 나온 작품이라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읽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변에서 들었던 것들을 잊고 책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원서를 읽었던 느낌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어서였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원서도 다시 찾아보았다. 어쩌면 내게 있어 이디스 워턴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작가였는지 모르겠다. 소설보다 먼저 읽은 것은 연보였다. 작가의 삶에 대해 먼저 읽은 탓인지 나는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소설에서 작가를 보게 된 것이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그 당시의 모습과 주인공이 많이 닮아 있었고 그녀의 자전적인 부분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런 부분들을 밖으로 한 번도 뱉어내지 못하고 가슴에 '멍'으로 채워 놓은 채 살아가야 하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작품 전반을 흐르고 있는 이 무거운 느낌, 이 느낌 때문일까 읽어가면서 행간에 숨어 있던 무거움이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언덕에 올라 있어도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그곳이 그녀가 추억에 잠기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느껴졌다. 마치 그녀가 뒷모습을 보인 채 쉬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소설을 읽어 가면 갈수록 작가가 이야기 하려는 녹색의 의미들이 하나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붙들고 있었던 손에 힘이 들어갔고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선에겐 언제나 어두운 터널처럼 무엇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것들이 풍겨져 나왔다. 그리고 그 느낌은 햇살의 눈부심과도 같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내 맘으로 들어왔다. 때론 그 모습이 어디론가 떨어지는 나락의 모습이었고 또 어떤 면에는 살아가면서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선이 있는 목재소가 어둠에 있을 때 나도 마치 그 곳에서 있는 것처럼 느껴져 어디론가 탁 트린 벌판으로 나가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라는 제도 안에서 이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의 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라는 틀과 벽이라는 거대한 문제가 늘 고스란히 마음으로 파고들어오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본능처럼 그것을 넘을 수 없음을 이선을 통해 느꼈고 내가 원하는 꿈과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처음부터 바꾸고 싶었지만 억지로 바꿀 수 없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순간, 순간의 모습은 어쩌면 이미 따뜻했거나 다정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낯설게 다가왔다. 책장을 덮으면서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던 것이 있다면 믿으면 믿는 만큼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머리 위의 구름들은 여전히 구름이 낀 모습들로 비춰지고 있었다. ‘이디스 워턴’이 보여주는 한 젊은 남자의 모습과 짧은 흐느낌은 애원의 목소리로 보였고 놀라움과 더불어 한층 크게 다가오는 현실은 매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습을 작가는 여리지만 뜨거운 심장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그리고 이 소설이 나를 인생이란 먼 길을 떠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한 슬픈 남자의 내면 풍경이 소설 전반을 흐르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마음을 다해 쓰다듬어 주는 그 느낌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표지를 보면서 소설에서 이야기 하던 ‘운명’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또한 이디스 워턴의 작품이 다시금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을 단순하지만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