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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가족의 울타리는 어느 정도의 범위로 한정 할 수 있을까. 결코 나라면 다시 돌아온 사람에게 예전의 정과 사랑이 남겨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인간에겐 삶이라는 소중한 것이 존재하고 있기에 자신의 처지를 비난하거나 하지 않고 순종하며 받아들인다. 그러나 버거운 삶은 여전히 그녀를 따라 다니고 있다. 그들에겐 불쑨 찾아온 짱구영감이 그저 반가운 손님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회복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형성하려고 이 책을 쓴 것 같지 않다.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면 그들에겐 객관적 진리에 대한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고 사회가 원하는 방향에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
70년대의 일본이 보여 준 새로움 보다는 현재 있는 것을 활용하여 무언가를 생산하고 유지하면서 현재의 삶을 즐기고 있다. 가족들에게는 그가 훌쩍 떠나버렸던 것은 이제 안중에도 없고 돌아와 준 것만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 간의 시간이 있어 그것을 풀어가고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할 뿐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이란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들의 풀어가고 있는 관계의 회복을 작가는 담담한 문체로 풀어가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한다. 가족관계의 회복은 다른 관계보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실수가 될 수도 있고 감동의 물결로 자연스럽게 회복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
잠 잘 곳이곤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공간에 덩그런이 남겨졌던 모자에게 그 시간은 끔직할 만큼 상상하기 싫었던 시간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겐 집을 떠난 짱구 영감이 이제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죽음으로 영감의 존재를 잊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쉽게 처분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오랜 시간 이루어졌기에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가족으로 그들 맞을만한 힘조차 없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감정은 때론 극에 달하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말못한 상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물들어 간다. 누가 먼저일 것도 없이 자신의 삶에 서로의 발을 빼지 못하도록 묶고 있다. 감정은 안색이 좋지 않은 어머니에게서 피워 오르고 회를 먹는 장면에서 한없이 약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느기게 하는 순간 살아온 것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늘 불안한 하루살이처럼 살았던 그들에게 짱구영감의 등장은 남남의 의미로 인식되고 말 못할 가족 사랑의 울타리를 메워 가고 있다.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던 가족의 의미도 때론 숨 가쁜 일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눈 녹듯 녹아내릴 것이다.
마음은 주변을 맴돌았다. 미려오는 슬픔에 주체를 할 수 없었고 지친 몸은 이제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만을 꺼내놓고 치유 될 수 없는 함정처럼 늪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 감정의 소용돌이는 크지 않고 잔잔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지녔다.
그것은 가족의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을 들여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절망의 늪은 이제 더 이상 발을 빠지게 만들지 않는다. 감정의 깊은 골에서 벗어 나기 위해 안정을 찾고 집을 떠나기전 마음으로 돌아간다.
상처로 얼룩진 세 사람의 길은 이제 그들이 던져 놓은 것들을 주워 담고 새로운 것을 뿌릴 때 가능 할 것이다.
수수한 것은 수수한 것들로 욕망에 불타 있는 것은 욕망의 눈빛을 지닌 채 걸어간다면 가족은 또다른 의미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잔잔한 떨림이 있었던 소설에서 저녁놀은 언제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 볼 때 그 가치와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애잔함에 마음이 가라앉지만 그래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어 오늘도 나는 이 길을 걷는다. 저녁이 되면 저녁을 기다렸던 그 오후의 마음으로 돌아가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울타리 안에서 나와 가족을 다시 바라봐야겠다.